당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열강이 밀려들며 조선 상공업은 붕괴 위기를 맞았다. 대한상의는 국내 상공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후 부산 인천 등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별 상업회의소가 잇달아 설립됐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엔 조선상공회의소와 22개 지방상의가 구성됐다. 1948년엔 조선상공회의소가 지금의 대한상공회의소로 이름을 바꿨다.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유일한 민간 경제단체로 명맥을 유지했다.
1952년 12월 상공회의소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듬해 10월 서울 등 24개 지방상공회의소가 이 법에 따라 설립됐다.
이중재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이세현 조양견직 회장, 송대순 대한증권 사장, 전용순 금강제약소 회장, 전택보 천우사 회장, 박두병 동양맥주 회장, 김성곤 쌍용양회공업 회장, 태완선 대한중석광업 회장, 김영선 대한재보험 회장, 정수창 동양맥주 회장, 김상하 삼양사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손경식 CJ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등이 수장을 맡았다.
대한상의는 1960년대 경영 상담, 실무강좌, 정책설명회 등 기업 경영과 관련한 진흥사업에 역점을 뒀다. 수출 부흥기이던 1970년대에는 국제 사업을 활발하게 벌였다. 1980년대 이후엔 시장 주도 경제를 주창하며 ‘시장경제 파수꾼’ 역할을 했다.
지금도 규제 개혁은 대한상의가 가장 역점을 두는 주제다. 2020년엔 민간 규제 샌드박스 지원센터를 열기도 했다. 대한상의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지만 기업을 지원하고 대변하는 조력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정부와 함께 경제 외교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는 각국 정상 및 정부 고위 관계자가 참여하는 한·일·중 비즈니스서밋을 열었다.
대한상의는 모든 업종의 대·중소기업을 회원으로 둔 종합경제단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전국적 조직을 구축한 유일한 경제단체이기도 하다. 서울상의를 비롯한 전국 73개 지방상의는 각 지역 상공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회원사는 19만 개에 달한다. 세계 130여 개국 상의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자격검정 시험 등 정부 위탁사업도 하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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