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닝샤 야시장에 있는 한 식당. 10여 명이 둘러앉은 원형 테이블 주변에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차이밍제 미디어텍 회장, 린바이리 콴타컴퓨터 회장 등 글로벌 정보기술(IT)산업의 ‘대만계 슈퍼 파워’가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몸담은 회사는 각각 인공지능(AI) 가속기(엔비디아), AI칩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TSMC), 스마트폰용 칩(미디어텍), AI 서버 주문 생산(콴타) 분야에서 ‘세계 넘버원’이다. “글로벌 AI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거인들이 대만 야시장의 허름한 테이블에 함께 앉은 것”이란 얘기가 나온 이유다.
대만이 미국 실리콘밸리와 함께 글로벌 AI산업을 이끄는 양대 축으로 떠올랐다. 실리콘밸리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중심으로 한 AI 개발·소프트웨어의 메카라면 대만은 이를 구현하는 반도체, 서버 등 하드웨어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대만계 미국인인 황 CEO는 이날 “AI 시대를 맞아 대만은 계속 세계 IT산업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 PC와 스마트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연명하던 대만의 환골탈태를 이끈 것은 TSMC다. 애플,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AMD 같은 세계적인 빅테크가 “우리가 설계한 칩을 먼저 생산해달라”며 TSMC 앞에 줄을 설 정도다. 칩 설계, 후공정, 테스트 등 다른 분야에서도 대만은 최강 반열에 올랐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대만계 IT 거물들의 긴밀한 네트워크도 대만을 반도체 강국으로 올려세운 요인으로 꼽힌다. TSMC를 통해 생산한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콴타가 AI 서버에 넣어 전 세계에 판매하는 식이다. 글로벌 IT업계에선 “대만과 친밀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4일 대만에서 공식 개막하는 IT 전시회 ‘컴퓨텍스 2024’에 인텔, 퀄컴, AMD, NXP, ARM 등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기업 경영진이 총출동하는 이유다.
황 CEO는 컴퓨텍스 개막을 이틀 앞둔 2일 기조연설을 통해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블랙웰’의 뒤를 잇는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을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이 제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개발 중인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를 장착해 데이터 학습·추론 능력을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다. 황 CEO는 “엔비디아와 대만의 파트너십이 세계 AI 인프라를 고도화하고 있다”며 “새로운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타이베이=박의명/황정수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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