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해 온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관한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 동력은 한층 힘을 받게 되었고, 의대 신입생을 늘린 대입전형 시행계획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고, 의료공백이 계속되면서 병원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중증 환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은 봉합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양 측이 내세우는 명분과 주장은 모두 일리 있는 부분이 있어 어느 한 쪽의 편만을 들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기왕 칼을 뽑은 이상 필수의료·지역의료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들이 지지와 신뢰를 보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기대해 본다.
의대 증원 이슈와 관련하여 의사 연봉에 관한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의대 진학 후 어떠한 단계를 거쳐 한 사람의 전문의가 양성되고 그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상 의사의 지위는 어떻게 평가될까. 주지하다시피 의과대학은 6년 과정(예과 2년/본과 4년)이고, 의대를 졸업한 후 인턴, 전공의(레지던트)를 거쳐야 전문의 시험을 볼 자격을 갖게 된다. 인턴은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보통 대학병원에서 1년간 진료경험을 쌓으면서 전문과목 선택을 위한 탐색을 하게 된다. 레지던트는 인턴기간을 마친 후 선택한 전문 과목에서 필요한 임상경험을 쌓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통상 3~4년 동안 진행된다.
이처럼 인턴과 레지던트는 기본적으로 ‘전문의 자격 취득을 위해 수련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피교육자’이지만, 교수 등의 지휘·감독을 받아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업무를 수행하며 야간당직근무도 수행한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대법원은, 레지던트는 그 교과과정에서 정한 환자진료 등 수련을 거치는 피교육자적인 지위와 함께 소속 병원에서 정한 진료계획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할 것이고, 또한 소속 병원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하므로 소속 병원과 사이에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89. 7. 11. 선고 88다카21296 판결 등). 인턴에 대하여도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다수 존재한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여 전문의를 취득하면 개인의 선택에 따라 무엇을 할지 선택하게 된다. 대학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전임의(펠로우)의 길을 걷기도 하고, 바로 개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업 전 경험을 쌓기 위하여 봉직의, 즉 페이닥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페이닥터의 경우 ‘타인에게 급여를 지급받는 의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데, 페이닥터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도 다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성이 인정될 경우 근로시간, 휴일과 휴가, 각종 수당 및 퇴직금, 해고 등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페이닥터의 근로자성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따라 판단하게 되는데, 최근 대법원은 의료소비자협동조합의 대표자로서 갑 의원을 운영하는 A가 의사 B와 위탁근로계약을 체결하고 "B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관계법과 관련한 부당한 청구를 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둔 사안에서 근로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B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21도11675 판결).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이 위탁진료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계약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B가 정해진 시간 동안 갑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A는 B에게 그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는 점, 갑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였던 유일한 의사인 B는 주중 및 토요일 대부분을 갑 의원에서 근무하면서 매월 진료업무 수행의 현황이나 실적을 A에게 보고하여야 했으므로, A는 B의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를 관리하고 B의 업무에 대하여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였다고 보아야 하는 점, B는 A가 제공하는 의료장비나 사무기기를 활용하여 진료업무를 수행하였고 A로부터 환자 치료실적에 따른 급여의 변동 없이 매월 고정적으로 돈을 받았으므로, B가 지급받은 돈은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아야 하는 점, B가 비록 진료업무수행 과정에서 A로부터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이는 의사의 진료업무특성에 따른 것이어서 B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판단에 이르렀다. 기존에도 페이닥터가 근로자임을 전제로 하여 수당 지급이나 퇴직금 등에 대하여 판단한 사례는 존재하였으나, 이 사건은 페이닥터의 근로자성이 직접적인 쟁점이 되어 그에 대한 판단이 내려진 사례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물론 페이닥터의 근로자성을 일의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고,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다르게 판단될 수 있음은 유의하여야 한다.
한편 페이닥터의 경우 통상 실수령액을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하기로 정하고 근로자가 납부하여야 할 근로소득세, 사회보험료 등은 사용자가 부담하기로 하는 방식, 이른바 넷(net) 페이 방식으로 급여약정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세전 금액을 기준으로 급여약정을 체결하기에 이러한 경우 월 급여와 평균임금 산정을 위한 임금 총액의 계산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퇴직금 계산을 위한 월 급여 자체는 실수령액에 한정되지만, 사용자는 매달 근로자의 실수령액에 대한 근로소득세 등을 대납하기로 하였으므로 그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사용자가 대납하기로 한 해당 근로소득세 등 상당액은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총액에 포함되어야 하고, 따라서 퇴직금을 산정할 때 그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근로자의 퇴직 전 3개월 동안 사용자가 부담하기로 한 근로소득세 등의 금액도 합산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1. 6. 24. 선고 2016다200200 판결). 의사 외에 다른 전문직의 경우에도 세후 금액을 기준으로 급여약정을 체결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넷(net) 페이 방식으로 급여약정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세급 대납분도 평균임금에 산입된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박은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