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넘게 주고 산 '샤넬백' 버릴 수도 없고…" 황당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4-06-03 15:57   수정 2024-06-03 17:05

“가방 리폼을 하는 게 불법이라고요? 내 돈 주고 산 가방인데 버리든 고치든 내 마음 아닌가요?”

최모 씨(36)는 오래 전 300만원대에 구매한 샤넬 가방을 작은 사이즈로 수선하러 리폼 업체를 찾았다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 같이 반응했다. 업체 측은 “명품업체나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등에서 잇따라 상표권 침해를 경고하는 공문을 받았다. 자칫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으니 리폼 제품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 공개적으로 올리진 말아달라”며 신신당부한 끝에 리폼 요청을 받아줬다.

최씨는 “몇백만원씩 하는 가방을 버릴 수도 없고 안 쓰고 두자니 아까워서 잘 들고 다니도록 수선하려는 건데 이게 문제가 된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황당해했다.
오래된 명품 가방 고쳐썼는데…불법이라고?
친환경을 위해 쓰던 물건을 재활용을 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선 일종의 가치소비 문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명품을 함부러 수선하다가는 상표권 침해소송을 당할 수 있다.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리폼 산업도 성장했지만 지난해 말 제동이 걸렸다.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이 루이비통 가방 리폼 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선비를 받고 지갑 등 다른 물건으로 리폼해준 업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1500만원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 가방 소유자가 원하는 대로 리폼을 해줬을 뿐, 제3자에게 판매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리폼 제품을 본 제3자는 루이비통과 혼동할 우려가 있어 상표를 사용한 게 맞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소비자가 합당하게 구입한 샤넬이나 루이비통 가방·지갑 등의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리폼하면 불법에 해당한다. 단순 수선(AS)만 가능하다. 수백만원 혹은 수천만원을 주고 구입한 내 소유물인데 함부로 고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비싼 돈 주고 산 가방에 대한 권리는 내 것 아니냐”는 반응부터 “집 리모델링도 불법이겠다”, “청바지 입다가 밑단이 찢어져 반바지 만들어 입으면 소송 당하는거냐” 같은 비아냥까지 쏟아졌다.
"내돈내산인데…나한테 권리 있는 것 아닌가요?"
소비자들 사이에선 상표권은 상품 거래 당시 이미 대가(가격)를 받은 것이라 상표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우세하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명품을 낡아서 혹은 지겨워서 새 디자인으로 변형해 재활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라는 논리다.

잘 쓰지 않는 루이비통 가방을 여러 번 수선해 사용한 경험이 있는 박모 씨(38)도 “어차피 버리지도 쓰지도 않을 거라면 리폼해서 유용하게 쓰는 게 소비자 권리이자 환경적 측면에서도 친환경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200만원 상당 루이비통 가방을 50만원가량 비용을 지불하고 미니백 지갑 파우치 등 4~5개 제품으로 만들었다. 일부는 자신이 쓰고 주변에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단골 리폼업체가 법적 분쟁을 우려해 명품 수선 서비스를 그만뒀다고 했다.


명품업체들의 리폼 제한 조치는 해외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유명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연인인 미식축구 선수 트래비스 켈시는 오래된 빈티지 샤넬 스카프를 장식 리폼한 셔츠를 입고 나왔다가 샤넬 법무팀으로부터 경고 서한을 받았다. 당시 이 옷은 럭셔리 액세서리 리폼을 전문으로 하는 한 스타일리스트가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었는데, 샤넬 측은 이 제품에 샤넬 로고와 브랜드 상징이 새겨진 점이 문제라고 봤다.

2022년엔 루이비통도 자사 제품을 리폼해주는 업체를 상대로 한 텍사스주에서 소송을 걸어 60만3000달러(약 8억3000만원)의 배상금과 수선 금지조치를 받아냈다.

다만 해외 법조계에서도 명품 상표권을 보장하는 조치에는 동의하지만 지적재산권법을 이용해 업사이클이나 재활용을 원하는 사람들까지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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