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에서 화재로 인해 한 차량이 전소됐다. 차량 내부가 까맣게 그을려 차량을 폐차할 정도로 큰 화재였지만, 유일하게 멀쩡했던 것은 운전석 컵홀더에 있던 스탠리 사의 주황색 텀블러. 화마에도 외관이 멀쩡하고, 안에 얼음마저 녹지 않은 상태로 발견돼 당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기능성으로 입소문났던 텀블러가 최근엔 자신의 스타일대로 꾸미는 '텀꾸'(텀블러 꾸미기)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텀꾸를 하는 텀블러 중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모델은 스탠리 사에서 나온 대용량에 손잡이가 달린 텀블러다. 스탠리는 텀블러 외에도 각종 조리 도구와 각종 캠핑 용품을 같이 판매하고 있는 회사지만, 텀꾸 열풍으로 미국의 '젠지(Generation Z,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들) 세대에게도 '핫'한 브랜드가 됐다.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텀꾸'를 10대들이 따라하기 시작했고, '스탠리컵(Staleycup)'이란 해시테그를 달고 자신이 직접 꾸민 텀블러를 SNS에 자랑했다. 텀꾸로 인기 있는 이 모델의 특정 색상을 사주기 위해 미국의 10대 부모들이 가게 앞에서 오픈런을 할 정도고, 스탠리 텀블러가 없어 왕따를 당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가장 간편하게 텀꾸가 가능한 스티커부터 빨대, 손잡이 스트립, 키링 등 부가적인 제품도 여러 가지다. 용도에 따라서도 인기 있는 파츠가 다르다. 가령 운동할 경우엔 손잡이 스트립을, 책상 위에서 쓸 땐 특정 모양의 고무 받침대를 끼우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텀블러가 단순히 음료를 담는 용기가 아니라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탠리 팝업 스토어가 열린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1층서 만난 30대 여성 은모씨는 "친구가 텀블러 꾸미는 것을 보고 평소 눈길이 갔다"며 "텀블러도 이젠 패션 아이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 와서 여러 제품을 살펴보니 정말 꾸미기 좋게 색감을 살리면서도 일부러 밋밋하게 만든 느낌이 들 정도"라며 "직접 붙일 손잡이 스트립과 스티커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봐뒀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30대 김모씨는 "현재 운동하는 용도로 쓰는 텀블러도 과하진 않지만 꾸며놓았다"며 "오늘은 회사에서 사용할 텀블러로 스탠리 제품을 사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운동용처럼 막 쓰진 않으니까 더 개성 있게 꾸며볼 생각이다. 색도 때가 덜 타는 상아나 연보라색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탠리 팝업 스토어 관계자는 "주문 건수는 평일은 200여건, 주말엔 400여건이 넘어간다"며 "보통 20~40대가 대부분이고, 구입할 때마다 텀꾸에 쓸 수 있는 스티커도 무료로 증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김모씨는 "이미 스타벅스 텀블러로 꾸민 제품을 가지고 있다"며 호랑이 무늬가 그려진 다른 텀블러를 내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저 텀꾸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며 "건전하고 색다른 취미라고 생각한다. 휴대폰 케이스랑 비슷하게 원하는 파츠를 통해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층 대부분이 개인 SNS를 가지고 있고, 과거와 달리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굉장히 많아졌다"며 "텀꾸 등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쓰던 물건을 꾸미는 것은 이제 표현 수단마저도 개성있는 방식을 취하려는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물건을 꾸미는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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