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프랑스 발목 잡은 재정적자

입력 2024-06-03 17:42   수정 2024-06-04 00:09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으로 살아났다. IMF의 지원 조건은 경제 신탁통치에 다름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라고 해온 국가부도 상황을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건전한 재정 덕분이었다. 정부가 구조조정용 공적자금을 적기에 조성하는 등 비상시 재정의 역할을 잘 해냈다. 물론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적극 응했고, 개인들도 돌 반지까지 꺼내며 금모으기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허리띠를 좼기에 재정 투입이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경제 안정과 발전에 재정 역할은 중요하다. ‘확장재정이냐 건전재정이냐’는 해묵은 논쟁이 되풀이되는 것도 그래서다. 현 정부 들어 ‘정부는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국가재정법 제16조)’는 법규 준수가 강조되고 있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직전 정부 때는 매년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예산 편성으로 ‘초(超)팽창 예산’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이어졌다. 국민연금 개혁부터 민생지원금이라는 25만원 현금 살포를 둘러싼 무수한 논란의 일차 귀착점도 건전재정이다. 적자 재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다음 세대에 넘기지 말자는 것이다.

재정은 경제성장률과 나란히 굴러가는 경제의 축이다. 성장률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가 될 때 재정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때 남유럽국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5개국 나라 살림이 파탄나면서 국제 공인 재정위기국이 됐던 게 반면교사다. 재정난과 저성장이 서로 원인이면서 결과로 악순환에 빠졌던 것이다. 현대 국가들이 경제성장률 1%포인트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린 게 큰 뉴스가 된 것도 그래서다.

최근 개혁의 페달을 강하게 밟아온 프랑스가 11년 만에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AA에서 AA-로 내린 이유는 과도한 재정적자와 낮은 성장률 두 요인 때문이다. S&P와 무디스, 피치 등 ‘월가의 포도청’이 지금 한국의 재정과 성장률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불안해진다.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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