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사기수법에 경찰도 속수무책…작년까지 쌓인 미제사건만 7만건

입력 2024-06-03 18:07   수정 2024-06-04 01:07

범인을 못 잡고 수사를 사실상 종결한 ‘미제 사기 사건’이 지난해 처음으로 7만 건을 넘어서며 역대 최다 규모에 달했다. 전체 사기 범죄 건수가 늘고, 수법도 고도화해 경찰 대응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미제 사기 범죄 건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제로 종결 처리된 사기 범죄는 총 7만114건이었다. 경찰이 접수한 전체 사기 범죄(34만7597건)의 20.2%를 차지한다. 미제 사기 범죄는 지난 10년 동안 급증해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추세다. 2020년 1만1596건으로 처음 1만 건을 넘은 뒤 매년 평균 2만여 건씩 급속도로 불고 있다.

경찰은 사기 수법 진화를 미제 건수가 느는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텔레그램 등 익명 SNS가 보편화하면서 범죄자가 숨을 공간이 많아졌고, 복합적인 사기를 연속해서 벌이는 사건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만 속을 태우고 있다.

사기 범죄 피해자 A씨는 지난달 광주광산경찰서에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어 부득이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널리 알려진 ‘안×× 명의 대포통장 중고 사기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이다. A씨와 같은 피해자 대책 모임에 있던 50여 명도 같은 문자를 받았다. 지난 1월 유사수신 사기 피해를 본 B씨도 비슷하다. 4000만원을 사기당했지만 최근 ‘미제 처리됐다’고 통보받았다. B씨는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며 “경찰의 사건 처리 속도가 너무 더디다”고 하소연했다.

일선 사기 범죄 수사 부서는 만성적 인력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수사관 한 명이 평균 30~50건의 사건을 동시에 맡다 보니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을 미제로 처리하지 않고는 다음 수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22대 국회에서 사기방지기본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기방지기본법은 사기 범죄 수사에 전문화된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을 설치하자는 내용을 담아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해 결국 폐기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방지기본법이 제정되면 최소한 사기 범죄 예방 차원에선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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