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를지 몰라도 내겐 ‘행복리스트’가 있다. 예쁘고 유쾌한 이름이지만 실상은 ‘To-Do List’의 우리말 버전쯤 된다. 산업부 과장이던 2007년 여름, 담당자별 업무를 이메일에 첨부할 때 불현듯 떠올린 파일 제목이었다. 깔끔하게 정리한 과제들의 구조와 내실이 만족스러워 ‘행복’으로 표현했을 텐데, 기특하게도 그날은 심지어 일요일이었다.
이후 모든 일을 행복리스트로 관리했다. 과업을 꼼꼼히 완수하기 위한 기준 혹은 기초로 삼았다. 통제와 관리가 아니라 소통과 공유를 위한 메모이자 책임을 묻기보다 함께 최선을 다하자는 동료들과의 약속이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면 이름 그대로 ‘행복’했는데, 지금도 적고 있냐는 지인들의 질문에는 그저 ‘행복한’ 웃음으로 답한다.
‘잊지 말자!’라는 목록도 있다. 좌충우돌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모아 온 교훈(?)들인데, 경험에 기반한 것이어서 가끔 다시 읽을 때면 속상하고 창피한, 화가 치솟던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허리를 세워 고쳐 앉게 된다. 하나하나 가르침은 여전하고, 고마울 뿐이다.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훈’의 관점은 많이 달라졌다. 무려 249개 문장의 첫 번째는 ‘지시는 간단명료하게, 쓸데없는 지시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공직 퇴임을 앞두고 적은 마지막 글귀는 ‘사람의 완벽성을 따지지 말고 장점을 먼저 찾아라’였다. 책상을 정리하면서 후배들에게 ‘선물’했는데, 내용을 떠나 부족한 선배의 진심만큼은 기억해 주길 바랐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소통과 공유, 책임과 성과의 가치는 소중하다. 가정은 물론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기로 마음먹는 일, 어렵지만 자신과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할 최소한일지도 모른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서도 ‘행복리스트’와 ‘잊지 말자!’를 꾸준히 쓰고 있는 이유다.
버킷리스트는 대들보에 걸친 밧줄에 목을 감고 다른 쪽 끝의 무거운 양동이를 걷어차 자살하던 예전 서양의 으스스한 풍속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꿈을 담은 목록으로, 노년의 명배우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2007년작 ‘버킷리스트’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끝을 직감한 노인들의 모험은 오직 사랑하고 행복하던 나날의 기억을 향했다. 버킷리스트에 오늘도 한 줄 새롭게 적는다. 언제까지라도 행복하기 그리고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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