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횡성군 둔내에서 차로 30분, 굽이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촌마을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클래식 핫플레이스’로 변신하는 곳이다. 세계적 음악가들이 인구 2000명도 안 되는 작은 동네에 찾아와 클래식 팬들을 매료한다.
계촌클래식축제 기간에는 마을 전체가 행사장으로 바뀐다. 비닐하우스와 공원은 공연장이 되고, 초등학교에는 연주자 대기실 문패가 붙는다. 농사짓던 마을 주민과 부녀회 회원들은 축제 가이드가 되고, 푸드트럭 요리사가 되고, 주차 요원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계촌마을이 클래식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가 학생 부족에 시달린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폐교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계촌초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전교생이 참여하는 별빛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오케스트라는 외지 학생을 하나둘 끌어들였고 폐교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런 사연을 들은 현대자동차 정몽구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계촌마을에 ‘예술마을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2015년 시작된 계촌클래식축제의 발단이었다. 한예종은 매년 졸업생을 보내 아이들을 가르치게 했다.
지난 2일 계촌마을에서 만난 주민 이모씨(67)는 이렇게 말했다. 축제를 찾은 방문객들이 마을길의 좁은 거리를 가득 메운 날이었다. 마을은 북적거렸다. 피아노 버스킹과 공연 리허설 소리로 가득 찼다.
올해 계촌을 찾은 유명 클래식 연주자 중 하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이었다. 조성진이 협연하는 축제의 폐막 무대이자 하이라이트 공연은 록페스티벌 못지않은 열기를 보였다. 이날 새벽부터 대기자가 나타났고, 공연 리허설 때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상대로 본 공연에서는 야외무대(로망스파크)에 마련된 6000여 개의 좌석이 가득 찼다. 무대 주변에 돗자리를 펴고 공연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의 가장 큰 기대를 모은 건 지휘자 김선욱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만남이었다. 피아니스트 선후배던 두 사람이 지휘자와 협연자로 만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성진은 김선욱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들려줬다. 트럼펫과 피아노의 앙상블이 중요한 이 작품에서 조성진은 평소대로 탁월한 테크닉과 안정적인 호흡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트럼펫이 연주할 때 중간중간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등장해 자연의 정취를 더했다. 앙코르곡으로 다시 피아니스트로 돌아온 김선욱과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을 듀엣으로 연주하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어 경기필은 브람스 교향곡 제2번을 들려줬다. 노을이 지는 가운데 브람스 2번을 완주한 김선욱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듯 다소 느릿하고 풍성하게 음악을 표현했다. 노래하는 부분은 충분히 음미하고, 몰아치거나 쭉쭉 흘러가지 않고 섬세하게 음악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야외 공연인 만큼 음향의 한계 때문에 그의 섬세함을 100% 전달하기는 어려웠지만, 축제 분위기를 달구기엔 충분했다.
폐막 공연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자리했다. 정무성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강수진 재단 이사, 피아니스트인 신수정 전 재단 이사장, 김대진 한예종 총장, 김봉렬 전 한예종 총장 등도 공연을 즐겼다.
둘째 날은 한예종 출신이 모여 무대를 빛냈다. 피아니스트 이진상(한예종 교수)과 지휘자 정치용이 한예종 학생들로 이뤄진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줬다. 계촌로망스파크에서 열린 메인 무대 외에도 비닐하우스, 공원 등에서 오후부터 밤까지 무대가 이어졌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소프라노 박소영, 기타리스트 장하은, 현악사중주 아벨콰르텟, 온드림 앙상블 등이 공연을 장식했다.
현대차 정몽구재단 관계자는 “올해 축제 기간에 1만4000여 명이 몰렸다”며 “확장된 프로그램과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통해 클래식 마니아뿐 아니라 모든 관객이 즐기는 국내 대표 야외 클래식 축제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평창=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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