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새가 날아들었다. 대학 다닐 때다. 문 열린 마루로 들어온 새가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날아다녀 소동이 벌어졌다. 동생이 안방으로 새가 다시 들어오자 얼른 문을 닫아 가뒀다. 새가 이 벽 저 벽을 타고 날아다닐 때 들어온 아버지가 문을 열라고 했다. 문이 열리자 새는 방안을 두서너 바퀴 돌다 밖으로 훨훨 날아갔다.
집 주위에서 흔히 보는 새는 아니었다. 회갈색에 흰 줄이 선명한 날렵하게 생긴 새였다. 참새나 딱새보다는 크고 까치보다는 작지만, 날렵하고 매끄러운 데다 경쾌한 울음소리를 냈다. 이튿날 그 새가 다시 집에 왔다. 마루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안으로 날아들지는 않았다. 오동나무에 앉았던 새는 측백나무로 단풍나무로 몇 번을 옮겨 다니며 때로 밝은 울음소리를 냈다. 사흘째 그 새는 집에 찾아왔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새 울음소리가 특이해 온 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와 동생들은 먹이를 부리나케 준비해 마당에 흩뿌려 두었지만 새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 정도 집에 들른 새는 더는 오지 않았다.
더는 새가 집을 찾아오지 않던 날 밤에 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는 “그 새가 아무래도 심상찮다. 그 특유의 울음소리가 마치 뭔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이어 “옛날 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조상님네들이 간혹 미물들의 몸을 빌려 후손들에게 나타나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며 느닷없이 나타난 저 새가 뭔가 우리 집안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귀띔해주는 거 같다. 혹 짚이는 게 없느냐?”고 물었다.
동이 트기 전 건넛방의 아버지가 소리 질러 모두 깼다. 마당에 천막 쳐 만든 연구실에 불을 켜고 아버지는 콩기름 병 주둥이를 알코올램프로 녹여 손으로 모양을 잡아나갔다. 당시 아버지는 ‘흐르지 않는 병마개’를 발명하려고 몇 개월째 실험 중이었다. 한참 병 주둥이를 만지던 아버지가 굳기를 기다렸다 콩기름을 넣고 따랐다. 몇 번 콩기름을 따라내던 아버지는 “해냈다 해냈어. 바로 이거다!”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버지는 그렇게 ‘흐르지 않는 병 뚜껑’을 발명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는 병뚜껑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했다”라고 말씀을 꺼내면서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머니가 다 쓴 콩기름 페트병을 수집해 온 것만도 마당에 그득했다. 일일이 씻어 기름을 제거해 아버지 실험 재료로 썼다. 아버지는 알코올램프로 병 주둥이를 녹여가며 모양을 수도 없이 바꾸며 연구에 몰두했지만 허사였다. 몇 달째 씨름하던 아버지가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 새가 나타났던 거다. 아버지는 “그 새가 뭔가 얘기하는 거 같아 ‘기름이 흐르지 않게 따르는 방법’을 연구해 성공했다. 그 새가 그걸 귀띔해줬다. 그래서 새벽에 깨 실험했다. 발명하고 보니 아주 간단한 걸 놓치고 있었다”라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병 주둥이를 조금 넓혀 따르는 양을 많이 하면 표면장력에 의해 기름이 병 주둥이를 타고 흐르지 않는 원리를 발명했다. 이튿날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다. 지금의 ‘알뜰 마개’는 아버지의 발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날 아버지는 고사성어 ‘수도선부(水到船浮)’를 인용했다. ‘물이 불어나면 큰 배가 저절로 떠오른다’라는 뜻으로 실력을 쌓아서 경지에 다다르면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주자전서(朱子全書) 32권 답장경부(答張敬夫) 편에 나온다. 주희(朱熹)가 문인을 훈도할 때 자주 쓴 말이다. ‘물이 모이면 도랑이 이루어진다’라는 ‘수도거성(水到渠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아버지는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차근차근 인내하며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는 온다”라며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준비하지 않아 기회를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물이 차면 배는 떠오른다.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내며 실력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뜻을 이루게 된다. 물이 불어나면 큰 배가 저절로 떠오르듯이 준비된 자에게는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라고 강조했다. 준비성은 키우기 쉽지 않지만, 꾸준한 노력을 통해 누구나 키울 수 있는 덕성이고 성품이다. 서둘러 반드시 손주에게도 깨우쳐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특히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끈기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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