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삼겹살이 너무 비싸서 이거 사 먹기 시작했는데 맛 괜찮던데요. 대신 자르기 힘드니 2시간만 해동한 뒤 소분하시고요. 바로 냉동 보관하세요. 완전히 해동시켰다가 다시 얼리면 누린내 나니까."
4일 정오 경기 용인에 위치한 한 창고형 마트의 정육 코너. 50대 남모 씨가 익숙한 손길로 5.5kg짜리 스페인산 냉동돈삼겹살을 고르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꾸준히 먹는 고기라 덩어리로 사는 게 훨씬 싸다"면서 "소분하는 것도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한다. 오히려 먹을 만큼 소분해둘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도 냉동 제품만 사다 보니 냉장실은 비었는데 냉동실만 꽉 차 있을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그가 고른 고기는 100g당 830원인 수입산 냉동 삼겹살. 손질돼있지 않은 '덩어리 고기'다. 국산 냉장 삼겹살은 100g당 2380원에 판매되고 있어 두말할 것 없이 덩어리 고기가 훨씬 저렴했고, 바로 굽기 좋게 손질돼있는 칠레산 냉동 삼겹살도 100g당 1333원이라 덩어리 고기가 37%가량 저렴했다.
6만2800원짜리 호주산 냉동 차돌박이 3.2kg을 쇼핑카트에 담던 30대 이모 씨도 "너무 많긴 한데 100g당 가격표 보고 가장 저렴한 냉동 차돌박이를 고른 것"이라며 "4인 가족이라 구워 먹으면 금방 동난다. 집 가서 된장찌개용, 구이용으로 소분만 해두면 된다. 동네 마트의 국산이나 냉장 차돌박이는 비싸서 살 엄두도 안 난다."고 말했다.
냉동 과일·채소 코너에서 만난 70대 김모 씨는 1만3980원짜리 대용량 큐브형 냉동 다진 마늘을 꺼내면서 "어차피 냉장 마늘도 쓰다 보면 냉동실 간다"며 "쓰기 편리하고 가격도 괜찮다"고 말했다.
한 소비자는 냉동 식재료가 신선 식품 대비 보관 기간이 길어 재료가 상해 버릴 일이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이날 계산대에서 냉동 아보카도를 구매한 60대 이모 씨는 "생아보카도만 쓰다가 (냉동은) 처음 사본다"며 "자주 먹으려면 이것도 비싼데 썩어서 버리는 것이 아까워 냉동으로 사봤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고물가 기조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면서, 먹거리 장바구니가 말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이왕 같은 식재료라면 냉동 제품을 담는 추세다. 육류는 손질된 제품 대신 덩어리 제품을 고르고, 원산지도 수입산을 선호했다. 소비자들이 상품의 품질이나 사용의 편리함, 신선도보다는 가격을 중심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이마트 창고형 할인점 22개 점포의 덩어리 고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6% 늘었다. 냉동 채소·과일 매출도 30% 넘게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돼지고기 수입량도 4월까지 17만8302톤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 대비 26.7%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벌크(bulk, 개별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대용량 상품) 제품이 주력 품목으로 이뤄진 창고형 매장의 인기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인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의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12% 늘었다.
롯데마트의 창고형 할인점인 롯데마트 맥스의 매출은 10%가량 증가했으며,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코스트코도 지난해 10%의 한국 시장 매출액 증가를 이뤄 영업 개시 이래 처음으로 매출액이 6조원을 넘어섰다.
한편,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100=2020년)로 지난해 동기 대비 2.7% 상승했다. 농·축·수산물은 동기간 8.7% 올랐다. 물가 상승률은 3월 정점을 찍고 둔화하는 모습이지만 생선·해산물·채소·과일 등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3% 올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