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아비뇽에서 라이벌 교황 두 명이 마주친 것 같은 아우라였다.”
1378년 유럽에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하늘 아래 두 명의 교황이 생기면서다. 클레멘스 7세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우르바누스 6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전 세계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했다. 물론 두 명의 교황이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저술가 데이비드 갤러웨이는 ‘아비뇽 유수’ 이후 600년 만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느꼈다.
영국 왕립예술협회 회원이자 큐레이터로 일한 갤러웨이는 1979년 독일 한스마이어갤러리 앞에서 앤디 워홀과 요셉 보이스가 만나는 장면을 두고 두 개의 태양이 만났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워홀은 ‘팝아트의 제왕’, 유럽의 보이스는 개념미술의 대가로 ‘20세기 다빈치’로 불렸다. 두 작가 모두 1980년대 후반 작고했다. 팝아트와 개념 예술,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예술을 펼친 워홀과 보이스지만, 이들은 일상적 이미지를 낯설게 표현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닮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명망을 쌓은 두 사람은 이듬해에도 만났다. 워홀은 다시 만난 보이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보이스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워홀은 자신의 카메라에 펠트 모자를 쓰고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를 담았다. 보이스의 사진은 다양하게 변주됐다. 워홀은 1980년부터 무려 6년 동안 보이스의 사진 하나로 작품을 만들었다.
보이스는 독일의 행위예술가이자 설치미술가다. 그는 사회에 저항하는 예술을 펼쳤다. 세계 2차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다가 구사일생을 경험한 그는 세상의 폭력성에 눈을 떴다. 이후 “예술만이 사회의 억압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주장하며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가 1965년 선보인 퍼포먼스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방법’에서 보이스는 기름 덩어리, 금박 그리고 꿀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고 팔에 죽은 토끼를 안았다. ‘인간도 알아듣기 힘든 현대미술을 토끼는 바로 알아듣는다’며 동물이 인간보다 더 위대하다는 메시지로 인간의 오만함에 일침을 날렸다. 그의 실험적 예술은 이후 필립 파레노,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후대 예술가에게 큰 영감을 줬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에서 열리고 있는 ‘빛나는 그림자: 요셉 보이스의 초상’은 워홀이 보이스를 그린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다. 워홀의 보이스 연작을 모아놓은 이 전시는 1980년대 이후 세계 처음으로 기획됐다. 캠벨 깡통 캔, 마릴린 먼로 시리즈 등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워홀의 작업 세계를 색다르게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한 명의 단일한 초상을 두고 워홀이 어떻게 다른 시도를 해 왔는가를 되짚어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워홀의 연구작을 집중 조명했다는 것이다. ‘유니크 트라이얼 프루프’ 시리즈로 불리는 워홀의 실험작을 전시장 한 방에 모두 채워 넣었다. 단색 배경에 다양한 색을 올리는 시도를 한 것이 특징인데 워홀에게 이 과정은 하나의 이미지에 다양한 변용을 주기 위한 연구나 다름없었다.
전시에 나온 작품 중 가장 두드러지는 작업은 잉크 위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덧뿌린 것이다. 잉크가 마르기 전 다이아몬드를 갈아서 만든 가루를 뿌렸다. 다이아몬드가 뿌려진 보이스의 얼굴이 전시장 조명과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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