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테마가 증시를 주도하고 있다. 테마의 확장도 빠르다. 소프트웨어·인터넷플랫폼에서 반도체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력기기와 원전·신재생에너지, 급기야 냉난방 공조까지 올라탔다. “스치기만 해도 급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AI테마의 상승세는 2년 전 2차전지 열풍과 닮은 꼴이다.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잇따라 증시에 입성했고, 주가가 크게 치솟았다. 하지만 주도주 자리를 내준 지금 2차전지 관련 종목들의 주가를 2년 전과 비교하면 처참할 뿐이다. 때문에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AI테마 열풍 또한 무조건 탑승하는 건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소재주의 낙폭은 더 크다. 양극재를 만드는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는 각각 58.61%와 54.33% 하락했다. 전해질 첨가제 업체 천보는 79.34%, 분리막 업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는 81.78% 빠졌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천보, SK IET는 2차전지 열풍을 업고 주식시장에 입성했다. 이들의 상장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공모주 배정에서 소외된다며 목소리를 높여 IPO 제도까지 바꿨지만, 현재 해당 종목들은 개인투자자들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다.
조리기구 제조업체 자이글은 작년 3월 2차전지 생산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6000원 정도였던 주가가 한 달여만에 3만1250원(작년 4월3일)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4일 종가는 6700원으로, 2차전지 사업 진출을 밝히기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차전지 설비 구축을 위한 유상증자의 대금 납입이 다섯차례나 미뤄졌고, 작년말 철회하기까지 했다. 금리 상승과 맞물려 2차전지 산업으로 자금 유입이 막힌 것이다.
전기차 캐즘(신문물의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이 2차 전지하락의 원인이다. 전기차를 충전할 인프라가 완벽히 갖춰지지 않아 대중화가 지연되고 있다. 수요 성장 둔화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테슬라는 차량 가격을 잇따라 인하했다.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올해 1분기 주당순이익(EPS)는 0.34달러로, 1년 전 대비 53.42% 줄었다. 매출도 21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가 줄었다. 12년래 최대 감소폭이다. 주가도 작년 7월18일의 고점(293.33달러)에서 39.9% 하락한 176.29달러로 지난 3일(현지시간) 거래를 마쳤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AI 모델을 도입하고도 매출 성장에 실패했다”며 세일즈포스의 주가 급락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반도체부터 서버, 전력 관련 테마까지 올해의 모든 주도주를 만들어낸 논리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AI를 도입하면 매출을 확대할 수 있고, 고객이 이를 사용하면 생산성이 개선된다는 것”면서 “세일즈포스의 매출액 쇼크는 주도주의 근거를 흔들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수요가 후퇴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빅테크기업들은 AI 관련 자본투자(CAPEX) 가이던스를 크게 높였지만, 매출액 가이던스는 제자리였다”고 전했다. AI 관련 투자에 따른 성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연구원은 “지난 10년간 (성장 기업의) CAPEX는 적자를 만들지언정 매출은 빠르게 증가시켰고, 투자자들은 여기에 가치(밸류)를 부여했다”며 “지금은 주주들이 AI 투자가 성장으로 이이지지 않는 상황을 묵과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증시에서 AI를 바탕으로 한 테마 확장은 계속되고 있다. 전력기기에 이어 전력을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를 거쳐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을 높여줄 수 있다며 냉난방 공조 시스템을 만드는 LG전자에까지 AI 테마를 좇는 수급이 다녀갔다. LG전자는 미국 데이터센터에 냉난방 공조 시스템을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지난달 28~29일 14.63% 상승한 뒤, 4거래일 동안 8.51% 조정받았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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