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퇴직’ 제도가 은행권에 확산하고 있다. 육아퇴직은 퇴사 후 2~3년간 아이를 돌본 뒤 다시 입사하는 제도다. 직원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경력 단절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 저출생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된다. 육아퇴직이 금융권에 이어 산업계에 도입되면 퇴직과 재취업을 반복하는 ‘N퇴(N번+은퇴) 시대’가 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달 말 처음 육아퇴직 제도를 시행한다. 이를 위해 지난달 말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았다. 총 35명이 육아퇴직을 신청했다.
우리은행의 육아퇴직 제도는 만 7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퇴사 2년6개월 뒤 퇴직 전 직급으로 복귀할 수 있다. 그간 쌓은 인사 평가와 연수 이력 등은 유지된다. 다만 육아휴직과 달리 퇴직 기간은 근속기간에서 제외한다.
국민은행은 올해 초 은행권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직원 45명이 재채용을 보장받고 퇴직했다. 출산·육아휴직(2년)과 육아퇴직(3년)까지 합쳐 최대 5년간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할 기회를 줬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시행에 들어간 육아퇴직 제도는 각각 퇴직 후 3년, 2년 6개월 후 다시 입사 기회를 주는 게 핵심이다. 입행 후 3년 이상 근무한 직원 중에 육아휴직 잔여기간이 6개월 이하이면서, 자녀가 만 7세 이하인 직원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퇴직 처리된 후 재채용 시엔 그만두기 직전 호봉과 인사평가 이력을 인정받는다. 통상 6개월~1년인 육아휴직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재직 상태를 유지하고 근속기간에 보함되는 육아휴직과 달리 육아퇴직 기간은 근속연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경력단절 우려 없이 육아휴직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양육할 기회를 얻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국민은행 입행 13년 차인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육아퇴직 제도 덕분에 퇴사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미 1년 6개월씩 두 차례 육아 휴직을 사용한 탓에 셋째 출산을 앞두고 복직과 퇴사를 놓고 고민해왔다. 그러던 A씨는 올 초 국민은행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육아퇴직을 신청하면서 한숨을 돌렸다. 은행권 남성 최초 육아퇴직자인 A씨는 “재채용 조건부 육아퇴직 제도를 활용해 육아에 좀 더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며 “3년 후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이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같은 은행 B씨도 육아퇴직 덕을 크게 봤다. 난임으로 고생 끝에 아이를 얻었지만 일과 양육을 병행하다 보니 아이는 7살이 될 때까지 친정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눈에 밟히던 아이와 3년간 함께할 기회가 주어졌기에 육아퇴직은 ‘가뭄 속 단비’로 여겨졌다. B씨는 “3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양육과 함께 그간 하지 못했던 자기 계발에 나선 동료들도 있다”고 했다.
육아퇴직 제도가 저출생·고령화 시대와 맞물려 ‘입사-퇴사-입사’가 자유롭게 반복되는 이른바 ‘N퇴(N번+은퇴) 시대’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고령 퇴직자의 재채용이 활발한 일본처럼 국내 금융권 역시 육아퇴직은 물론 희망·정년 퇴직자의 재취업 사례가 늘고 있다”며 “퇴직과 재입사가 반복되는 현상이 금융권을 넘어 다양한 업종에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향후 차별없는 재채용이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육아 퇴직자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차별없이 근무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진짜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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