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3대 제약사 중 하나로 꼽히는 항서제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실사를 나오자 문서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직접 찢어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중갈등이 바이오 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동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미국 제약전문매체 피어스파마 등에 따르면 FDA가 지난 1월 8~16일 중국 항서제약 공장 실사를 나갔을 때 직원들이 문서를 폐기하는 모습을 포착했을 뿐 아니라 바닥에 물 웅덩이와 곰팡이가 있는 등 위생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FDA가 항서제약에 보낸 ‘Form 483’에 따르면 “컨테이너 폐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약 물질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거나 “2~3명의 다른 직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여성 직원 한명이 매우 빠르게 문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Form 483은 FDA 관계자들이 공장 실사를 진행한 후 보완점 등을 적어 각사에게 보내는 문서다.
특히 FDA는 항서제약 직원들이 문서를 폐기하는 과정을 매우 자세히 기록했다. FDA 홈페이지에 공개된 해당 Form 483에 따르면 “폐기물 관리 빌딩을 실사할 당시, 우리들은(FDA 직원들은) 폐기물이 버려지는 특정 장소로 이동하기를 요청받았다”며 “그 요청을 받자마자, 한 직원이 휴대전화로 어딘가 전화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적혀있다.
이어 “시설 밖에 있는 쓰레기통을 지날 때, 여성 직원이 굉장히 빠르게 문서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며 “또 다른 직원은 갑자기 손을 몸 앞에서 뒤로 감추더니 문서를 찢어버렸다”고 기록했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위생도 위생이지만, 문서 폐기 절차가 적합하지 못했던 점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항서제약이 진행한 물질 개발 및 생산 전반의 데이터(CMC)에 대한 신뢰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유경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담당 연구원은 “설비 위생문제는 차라리 개선하면 되지만 데이터 진정성(data integrity)은 그 기업의 신뢰도와 맞닿아 있는 문제”라며 “그런 데이터 진정성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과 거래 제한을 골자로 하는 생물보안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Form 483을 계기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FDA가 지난 1월 실사 나간 공장이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국내 바이오기업 HLB는 자체 개발 중이던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과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을 함께 사용하는 임상을 진행해 FDA 승인에 도전했으나 불발됐다. 하지만 항서제약은 피어스파마에 “Form 483과 최근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FDA 승인 불발은 관련이 없다”고 전했다.
HLB 관계자 역시 “캄렐리주맙 공장 실사는 지난해 11~12월 진행됐으며, 이번 Form 483과는 관련이 없는 공장”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오는 7월 2일(현지시간) FDA와 보완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빠른 시일내 보완서류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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