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재판의 최대 관심사는 외환거래법 위반 여부였다. 검찰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였던 2019년 이 전 부지사가 도지사 방북 비용(300만달러)과 북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500만달러)을 쌍방울이 대신 북측에 내도록 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 상당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도지사 방북 비용으로 보낸 300만달러 가운데 230만달러가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이 가운데 200만달러가 실제 북한 노동당에 지급됐다고 판시했다. 대가성에 대해서도 “경기지사 방북과 관련한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달러 중에선 164만달러가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환치기로 보낸 건 직접 현금을 들고 간 게 아니어서 무죄”라고 판단했다. 외국환거래법은 돈을 ‘휴대할 때’ 세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환치기는 해당 법률을 위반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전반적인 양형 이유에 대해서는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기업을 무리하게 동원했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자금을 지급하는 범죄를 저질러 외교·안보상 문제를 일으켰다”며 “(피고인이) 비합리적 변명으로 일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부지사 시절 쌍방울에서 제공받은 법인카드 등도 뇌물에 해당한다며 다른 혐의 역시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사는 재판 직후 “재판부가 편파적으로 증거를 취사 선택했다”고 반발했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6월 검찰 조사에서 쌍방울의 방북 비용 처리에 대해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이후 “검찰의 압박에 허위 진술했다”며 말을 바꿨다. 최근에는 ‘검찰청 술판’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의 회유·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의 외환거래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이 전 부지사가 이 같은 내용을 이 대표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며 별도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이 전 부지사가 유죄판결을 받은 만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제3자 뇌물 혐의로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재판부는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거할 때 이 대표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다. 향후 추가 기소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 수사가 검찰에 의해 조작’됐다며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 공방으로 몰고 가려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날 재판부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조작 수사로 야당을 옥죄려는 검찰의 행태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이라고 밝혔다.
한재영/수원=권용훈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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