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쌍방울 대북 송금, 경기지사 방북 사례금 맞다"

입력 2024-06-07 18:47   수정 2024-06-08 02:56

쌍방울그룹의 800만달러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기소된 지 1년8개월 만이다. 이 전 부지사의 불법 대북송금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서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장동·백현동·성남FC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확대되는 한편 정치권 공방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李, 죄질 불량…엄벌 불가피”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는 7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6개월과 벌금 2억5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에게 3억2595만원을 추징하라고도 판결했다.

이날 재판의 최대 관심사는 외환거래법 위반 여부였다. 검찰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였던 2019년 이 전 부지사가 도지사 방북 비용(300만달러)과 북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500만달러)을 쌍방울이 대신 북측에 내도록 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 상당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도지사 방북 비용으로 보낸 300만달러 가운데 230만달러가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이 가운데 200만달러가 실제 북한 노동당에 지급됐다고 판시했다. 대가성에 대해서도 “경기지사 방북과 관련한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달러 중에선 164만달러가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환치기로 보낸 건 직접 현금을 들고 간 게 아니어서 무죄”라고 판단했다. 외국환거래법은 돈을 ‘휴대할 때’ 세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환치기는 해당 법률을 위반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전반적인 양형 이유에 대해서는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기업을 무리하게 동원했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자금을 지급하는 범죄를 저질러 외교·안보상 문제를 일으켰다”며 “(피고인이) 비합리적 변명으로 일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부지사 시절 쌍방울에서 제공받은 법인카드 등도 뇌물에 해당한다며 다른 혐의 역시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사는 재판 직후 “재판부가 편파적으로 증거를 취사 선택했다”고 반발했다.
○檢, 이재명 수사 탄력받을 듯
이 전 부지사 판결이 주목받은 것은 국회 다수당 대표인 이 대표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쌍방울의 불법 대북송금에 이 전 부지사가 관련된 것으로 인정되면 당시 도지사였던 이 대표까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과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해온 이유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6월 검찰 조사에서 쌍방울의 방북 비용 처리에 대해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이후 “검찰의 압박에 허위 진술했다”며 말을 바꿨다. 최근에는 ‘검찰청 술판’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의 회유·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의 외환거래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이 전 부지사가 이 같은 내용을 이 대표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며 별도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이 전 부지사가 유죄판결을 받은 만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제3자 뇌물 혐의로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재판부는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거할 때 이 대표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다. 향후 추가 기소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 수사가 검찰에 의해 조작’됐다며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 공방으로 몰고 가려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날 재판부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조작 수사로 야당을 옥죄려는 검찰의 행태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이라고 밝혔다.

한재영/수원=권용훈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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