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부주지 스님'은 근로자일까…법원 판단은?

입력 2024-06-09 09:00   수정 2024-06-09 14:04

절에서 일하는 '부주지' 스님도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1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A 재단법인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해고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의무를 위반해 부당해고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재심판정은 위법하지 않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A 재단은 1963년 설립돼 상시 약 10명의 근로자를 사용하면서 불교 교리를 보급하는 법인이다. 이 사건 피고 보조참가인 B씨는 2021년부터 이 재단이 소유한 사찰 C사에서 '부주지'로서 사찰 행정업무 등을 수행했다.

그러던 중 A 재단은 2022년 6월 10일 B씨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2022년 6월 9일 C사를 지자체에 인도했고 재단의 퇴거명령에 불응하고 욕설 등 스님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했으며 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해고 통보를 했다.

이에 B씨는 "'문자 해고' 통보는 부당해고"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B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지노위 결정에 불복한 B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다. 중노위는 "B씨는 A 재단과의 사용종속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며 재심 신청 인용을 했다. A 재단 측은 재심 판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A 재단 측은 "B씨에게 매달 지급된 돈은 스님의 종교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보시금' 형태로 지급된 것이고, B씨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대각문화원 측의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부주지'는 주지를 보좌해 사찰 관리업무 및 사찰 행정업무 등을 수행한다"며 "그 직위의 명칭 및 기능상 '부주지'는 그 업무가 이미 상당 부분 정해져 있는 상태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와 A 재단의 전무이사 사이의 SNS 대화 내용을 토대로 재단 측이 B씨에게 업무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지휘·감독했다고 봤다. 또 B씨의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에 어느 정도 자율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B씨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자 해고'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그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문자메시지에 의한 해임 통보가 ‘서면’ 통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재단 측이 B씨에게 서면 통지를 할 수 없었다거나 서면 통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절차상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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