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발칵 뒤집은 '포항 앞바다 석유' 로또 아니다 [원자재 이슈탐구]

입력 2024-06-10 04:01   수정 2024-06-10 10:22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을 찾아 "산업통상자원부의 국내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시추 계획을 승인했다"며 이같이 발표했다.

정치권에선 큰 소동이 벌어졌다. 야당에선 '지지율을 올리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공격에 나섰고, 일각에선 지질 분석을 주도한 액트지오는 세금도 못 내는 영세 업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호주 탐사업체 우드사이드가 이미 해당 광구의 석유 부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탐사를 포기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석유공사는 이 같은 공격을 예상한 것처럼 며칠 사이 7차례에 걸쳐 설명자료를 내면서 차분하게 의혹을 일축했다.



석유·가스전 개발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지질구조가 확인된 것은 작년 말께라고 한다. 이후 5~6개월간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 대통령의 발표 후 3일 만에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한국으로 날아와 지난 7일 기자회견도 했다. 자신의 탐사 분석 결과와 업계 탐사 사례, 해외 자원 개발 역사를 종합하면 영일만 정도면 당연히 탐사에 나서야 한다는 게 요지다. 탐사 성공 확률 20%가 사실이라면, 그 정도 확률의 복권은 긁어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자 모 정당 의원은 1회 1000억원의 탐사시추 비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해당 정당은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민생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생지원금 지급엔 약 13조원이 필요하다.
영일만 광구 1인당 매장량 최대 280배럴 불과
석유와 가스가 최대 약 140억 배럴 정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탐사에 성공하면 2035년께 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은 엑슨모빌 재직 당시 남미의 신흥 산유국 가이아나의 해상 유전 탐사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아브레우 고문은 "영일만 해저 지질 구조가 가이아나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동해의 해당 지점은 가이아나 스타브룩 광구(수심 1500~1900m)에 비해 수심도 1000~1200m가량으로 더 얕고, 경제성이 확보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상한 최대치의 유전이 발견된다 해도 국민 1인당 매장량을 (아주 거칠게) 계산해보면 한 사람당 280배럴 정도에 불과하다. 유가를 100달러로 잡아도 2만8000달러(약 3800만원) 정도다. 해저 유전의 비싼 생산 비용을 고려하면 수익은 더 줄어든다. 이마저 매장량 100%를 다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한 번에 다 퍼내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생산이 이뤄진다. 불필요한 논란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최근 석유 하나로 가난을 탈출했다는 가이아나는 인구가 80만명에 불과하고, 1인당 매장량이 약 1만3700배럴에 달한다. 중동 산유국은 대부분 왕족 등 일부 계층, 소수의 시민권자가 이익을 독식하기 때문에 그들만 돈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래도 동해 석유 탐사에 성공한다면 빠르게 고갈되는 국민연금 기금과 의료보험 기금 등 재정에 단비가 될지 모른다. 전쟁과 같은 유사시 적국에 해상 통행로를 봉쇄당하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저출산으로 소멸의 길을 걷는 한국의 운명을 바꾸기엔 부족한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1인당 GDP 1500달러 북한, 석유는 '로또'
2023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1500달러의 북한에서 석유가 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북한이 석유 개발에 성공해도 '자원 개발에 성공한 국가는 오일 머니 때문에 국내 산업 기반이 붕괴되고 독재 정권은 강화된다'는 이른바 '자원의 저주'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김정은이 석유를 판 돈으로 술과 사치품을 사들이고, 군의 무기를 현대화할 것이란 점도 예상된다.

그럼에도 수익의 일부라도 배분돼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은의 권력이 더 강해지겠지만, 그가 수세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석유 탐사 발표가 나온다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기대하는 쪽과 우려하는 쪽으로 나뉘어 극심한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논란과 별개로 북한의 석유 자원 개발 가능성은 적지 않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11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평양이 기름 위에 떠 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석유 탐사에 참여했던 영국과 말레이시아 몽골 등의 기업들도 평양 남쪽 자룡분지를 석유 매장 추정지로 지목했다. 영국 가디언은 2013년부터 북한에서 석유 탐사를 했던 몽골 HB오일 자료를 인용해 "북한의 3개의 분지에 석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2개 유정을 시추했고 대부분 유정에서 경질유가 나왔으며 하루 75배럴의 원유를 시험 생산한 결과 탄화수소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석유 자원 개발에는 이르지 못했다. 영국업체 아미넥스가 2004년 원유 탐사 및 개발 계약을 체결했으나 2012년 포기했다. 몽골 HB오일의 탐사 작업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파트너인 조선석유개발회사를 제재한 탓에 HB오일은 사업을 포기했다. 월간지 신동아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한 2018년엔 북·미 협상 과정에서 북한 남포 앞바다 서한만(西韓灣) 유전 공동 개발에 합의했으나 이에 대해 중국이 강력 반발했다"는 일화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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