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까지 쓰며 출장 가야 하나"…공무원들 '불만 폭발' [관가 포커스]

입력 2024-06-12 09:06   수정 2024-06-12 09:25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의사 파업으로 예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최근 출장 여비로 또 다른 ‘속앓이’를 하고 있다. 1년 치 출장비를 반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거의 다 써버린 부서가 속속 나오고 있어서다.

총 부서원만 10명이 넘는 복지부 A 부서의 경우 출장여비(국내) 예산이 지난해 2000여만원에서 올해 1500만원으로 깎였다. 이마저도 1년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달까지 이미 1200여만원을 쓴 상태다. 이 부서의 B 사무관은 “그나마 지난달엔 국회가 ‘스톱’돼 있어 출장 여비를 아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국회가 공전(空轉)하길 바라는 씁쓸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재정건전성 기조에 따라 중앙부처 부서의 출장 여비가 깎이면서 공무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나라 살림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고물가 시대 속 박봉을 견디는 공무원들이 사비까지 들여 현장을 누비길 꺼리면서 정책의 ‘디테일’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가에선 부서원 단합을 위해 1년에 한 차례 진행하는 워크숍조차 포기하는 부처도 속속 나오고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세종에서 가까운 충주나 청주로 ‘당일치기’ 일정을 계획했지만, 당장 가을까지 버틸 여비도 남지 않아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도하는 민생 토론회가 주는 부담도 상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경기 용인에서 첫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개최한 이후 지난달까지 전국을 돌며 25번의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민생토론회에서 논의되는 안건과 관련 있는 부서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1박 2일로 해당 지역에 출장을 가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출장 여비가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한 사무관은 “올해 민생토론회를 쫓아다니는데 들어간 여비만 300만원이 넘는다”며 “민생토론회의 취지는 정말 좋지만, 일선 부서에선 계획에 없던 출장 여비 소진이 크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출장 여비가 대폭 삭감된 건 나라 살림살이를 아끼기 위해 당장 공무원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출장 여비가 줄면서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현장 행보’까지 줄어든다는 점이다.

출장 여비가 줄다 보니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지방자치단체 현장 방문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같았으면 팀장이나 과장이 동행할 출장도 여비 부족으로 인해 막내 사무관 한명만 가는 경우도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주요 사업의 맥락이나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입을 닫는 경우가 벌어진다.

지자체 입장에선 과장급 이상 공무원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중앙부처에서도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 아예 체념하기도 한다. 한 사무관은 “부처 체면도 살리고 지자체 담당자들의 '기'도 살리기 위해 내 돈으로 직접 밥이나 커피를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공무원들의 사기 저하도 문제다. 별다른 월급 인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출장 여비까지 깎이면 “원치도 않는 출장을 내 돈까지 쓰면서 가야 하나”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무원 보수 인상률은 △2020년 2.8% △2021년 0.9% △2022년 1.4% △2023년 1.7% △2024년 2.5%에 불과했다. 수당미 포함 시 올해 9급 1호봉의 월급은 181만5070원으로 최저임금(월 206만704원)보다도 낮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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