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일반인의 상속세 문제는 정부·여당 일각에서도 지난 총선 때 공약으로 저울질하던 테마였다. 그러다 엉뚱하게 ‘증시 밸류업’ 한답시고 기업 오너의 상속세 문제에만 매몰된 사이 민주당에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하지만 상속세는 정치적 셈법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상속세 개편이 중요한 본질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장기 그래프로 그려보면 2016년 4분기를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길이다.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의 실질 가치가 줄고 있다는 건데,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얄팍한 소득 대비 자산가격이 너무 올라 부를 축적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는 경제성장기에 올라타 월급이 오르고,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도 상승하면서 부의 축적이 가능했지만 2030세대는 부모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2030세대는 평균적으로 부모 세대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갖고,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더 좋은 집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청년층의 부채가 규모나 증가율에서 다른 연령대보다 심각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젊은 층의 결혼 기피와 저출생 문제 역시 이런 맥락과 정확히 정비례한다. 부가 고령층에 머물면서 이는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 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부의 이전’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은 해답일 수 있다. ‘부의 대물림’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미 선진국에서도 베이비붐 세대 은퇴를 계기로 부의 이전 논의가 정책으로 연결되면서 성과를 보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까운 일본은 기시다 정부 들어 ‘부의 회춘(回春)’이란 재미있는 이름의 정책까지 내놓으며 세대 간 자산 이전을 정부 차원에서 본격 추진했는데, 우리도 진지하게 탐구해봐야 한다.
세대 간 부의 이전에서 걸림돌은 세금이다.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과표에 따라 10~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슷한 일본은 부의 회춘 정책을 시행하면서 각종 증여세 감면 제도를 내놓아 실질 세 부담을 크게 낮췄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자녀 결혼자금 증여 시 공제한도를 종전보다 세 배 늘렸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경제 현실에 맞게 상속·증여세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빠듯한 국가 재정을 감안해 세수 감소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전체 세수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줄어 3% 안팎이다. 세 부담을 더 낮춰 부의 이전이 활발해지고, 이것이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 활력으로 연결된다면 오히려 세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관건은 부자 감세, 부의 대물림 논란을 어떻게 비켜갈 것인가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이웃 일본이 제시해주고 있다. 바로 정교한 정책 설계다. 예컨대 증여공제의 경우 결혼이나 출산 육아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를 사후 관리해 새는 돈을 막고, 정책의 효과는 배가되도록 하는 식이다. 우리도 상속 증여세율을 일괄 낮추기보다 저출생과 소비 투자 등 특정 목적을 명확히 정해놓고 그것을 촉진하는 분야에 한해 감면해주는 방식을 도입해볼 수 있다.
남은 과제는 부를 이전받지 못하는 젊은 층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다. 이는 결국 국가가 복지로 떠안아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증여세를 매기면서 거기서 발생하는 세수를 이런 데 쓰지 않을 거면 세율이라도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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