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사비 분쟁의 핵심은 예상치 못한 건설자재 가격 급등 부담을 건설사가 전적으로 떠안는 것이 불공정한지 여부다. 시공사 측은 예상치 못한 원자재값 폭등 상황에서 추가 공사비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불공정한 약정으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건축·재개발조합, 민간 기업 등 발주처는 계약 준수의 원칙에 따라 특약의 효력을 주장하며 양측이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급등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특약을 무효로 보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은 특약 효력을 제한하려는 다른 회사들의 소송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업계는 이번 합의 직전 물가 배제특약을 무효로 본 법원 판결이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민간 도급계약상 물가 배제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계약 해지 요건도 엄격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 부산고등법원은 ‘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을 근거로 특약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확정됐다.
법원 판결과 비슷한 효력을 지니는 중재 판정에서도 물가 배제특약을 무효로 본 결정이 나왔다. 대한상사중재원은 한국중부발전과 한 중공업 기업 간 탈황설비 구매계약 중재 사건에서 이 특약을 무효로 보고, 시공사가 청구한 추가 계약금액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라고 판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의 도급계약에서 물가 배제특약을 무효로 본 기존 판례는 있었지만, 설비 구매계약에서도 특약이 무효로 판단돼 주목된다.
법무법인 율촌의 이경준 변호사는 “최근 나온 물가 배제특약 무효 판결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원자재값 급등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고려된 것”이라며 “건설산업기본법을 근거로 특약을 제한하려는 소송이 당분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공사비 분쟁은 특약과 건설산업기본법 해석을 둘러싸고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법인 지평의 정원 변호사는 “KT그룹은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신공영 등과도 물가 배제특약이 담긴 도급계약을 체결한 만큼 이번 쌍용건설과의 소송전이 다른 회사의 특약 유효성을 따지는 중요한 판결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물가변동 배제특약
시공사가 착공 후 물가 변동에 따른 추가 공사비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도급계약서상 특약.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이 특약의 유효성을 다투는 소송이 늘고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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