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재훈 씨(41)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퐁퐁남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아이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태블릿PC엔 김씨의 구글 계정이 연동돼 있다. 그는 “최근 휴대폰 유튜브에서 관련 콘텐츠가 떠서 봤는데, 아이가 내가 본 것에 영향받을 줄 몰랐다”며 “아이가 괜한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돼 마음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성별 갈등을 유발하는 극단적인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보여줘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남성에게 ‘여혐’ 콘텐츠를, 여성에겐 ‘남혐’ 콘텐츠를 띄우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김씨도 퐁퐁남 콘텐츠를 찾아서 본 게 아니었다. 40대 초반 남성을 겨냥해 유튜브 알고리즘이 소개한 콘텐츠를 클릭했을 뿐이다.
‘유튜브는 비혼주의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에 부정적인 콘텐츠를 많이 띄우는 경향도 발견되고 있다. 11일 한국경제신문이 이달 말 결혼을 앞둔 동갑내기 임모·김모씨 커플에게 ‘결혼’이라는 단어를 유튜브에 검색해달라고 한 결과 처음에는 ‘웨딩홀 찾기’ ‘알뜰 결혼 준비’ ‘진지한 연인의 공통점’ 등 결혼 준비와 관련된 내용이 떴다. 하지만 10여 개 콘텐츠를 추천한 뒤 유튜브는 여성인 임씨에게 ‘이런 남자와는 절대 결혼까지 못 간다’ ‘웨딩플래너가 본 파혼하게 되는 이유’ ‘반드시 걸러야 하는 남자’ 등의 부정적 콘텐츠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남성인 김씨의 콘텐츠 피드도 비슷했다. 김씨는 “약혼자에게 내 알고리즘에 이런 게 뜬다는 걸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며 휴대폰을 껐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은 연구 결과로도 확인됐다. 아일랜드 더블린시티대 괴롭힘방지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남성 우월주의자를 홍보하는 유튜브 쇼츠와 틱톡 알고리즘’ 보고서에 따르면 유튜브와 틱톡은 사용자의 검색 방향과 무관하게 남성 우월적 콘텐츠를 남성 청소년에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진은 스마트폰 공기계 열 대를 마련해 실험한 결과 유튜브 쇼츠에선 일반적인 16세, 18세 남성 계정으로 설정한 기기에서 각각 17분과 2분 뒤 바로 남성 우월주의 콘텐츠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남성 우월주의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계정으로 설정했을 때는 각각 8분과 2분 미만으로 추천 속도가 빨라졌다. 틱톡에선 일반 남성 계정이 남성 우월주의 콘텐츠를 추천받는 데 각각 9분과 15분이 걸렸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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