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자매가 "경찰과 검찰에게 2차 가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피해자 자매는 13일 기자간담회를 연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에 전한 서면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줄은 몰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피해자 측은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하겠다"면서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경찰과 검찰에게 2차 가해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며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A양은 당시 가해자들에 의해 밀양에 있는 한 여인숙에 끌려가 둔기로 폭행당하고 집단으로 성폭행당했다. 가해자들은 그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위협하며 약 11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서 A양을 불러내 때리고 성폭행하고 촬영했다.
이렇게 범행이 이어지면서 집단 강간에 가담한 인원이 계속 늘어났고 A양의 여동생, 또 사촌 언니까지 불러내 때리고 금품을 빼앗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A양의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를 해보니 A양 외에도 인근의 여중생, 여고생 등 총 5명이 이들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무려 44명이었고 망을 보거나 범행을 촬영하면서 가담한 사람도 무려 75명이다.
하지만 44명 외에는 훈방 조치 됐고 44명 중 13명은 피해자 A양의 아버지와 합의하며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지금은 법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강간죄, 강제추행죄가 친고죄였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할 근거는 없었다.
나머지 31명 중에서도 20명은 소년부로 송치됐고 또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돼서 다른 청으로 송치가 됐다. 검찰이 이 사건으로 기소한 건 10명이었지만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였고 또 청소년들이 성적 호기심이나 충동적인 집단 심리로 저지른 우발적 측면이 있다고 참작해 소년부로 보냈다.
판사가 형사처벌 대신 교화를 위한 처분을 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른 범죄로 처벌받은 1명 외에는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
A양은 수사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피해를 입었다. 경찰에 신고한 A양의 어머니와 A양이 신원이 노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경찰은 가해자와 같은 조사실 안에서 마주 본 채로 지목하게 했다.
수사 시작 직후 가해자 가족들은 A양을 둘러싸고 '어디 제대로 사나 보자', '몸조심해라'라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경찰관은 "너는 밀양 애도 아닌 게 왜 여기 와서 밀양 물을 흐리냐. 먼저 꼬리친 거 아니냐?"는 발언했고 노래방 도우미에게 A양의 실명을 말하면서 "A양이랑 너랑 똑같이 생겨서 밥맛 떨어진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검찰 또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비판받았는데 한 검사는 A 양에게 "동생이랑 짜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라거나 또 다른 일 때문에 밀양에 간 적이 있다는 걸 언급하면서 "나 같으면 한 번 당한 다음에 밀양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을 것 같은데 왜 어떻게 또 갔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쫓겨나다시피 서울로 이사 간 A 양은 받아주는 학교를 찾지 못해 전전하다 한 학교에 정착했지만 이 학교에도 가해자 부모들이 찾아와 협의를 종용하는 바람에 화장실에 숨어 있는 등 곤욕을 치르다 결국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잠시 다녔던 서울 모 중학교의 교사는 "A 양이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전학왔을 당시 꾀죄죄한 모습의 어머니가 울면서 부들부들 떨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몇 년이 지난 후에 한 커뮤니티에 적기도 했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밀양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모금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모금 배경에 대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가해자들이 가족, 사회적, 지역적 자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생계 직업을 영위해가는 모습을 봤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처하게 되는 환경과 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모금은 상담소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과 상의해 최종 결정됐다. 모금된 후원금 전액은 피해자의 생계비로 쓰인다.
김 소장은 "일부 사람들의 동정이나 비난에 좌초되지 않고, 사회적 우애와 연대의 힘으로 지속되는 단단한 기반이기를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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