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나오는 경제·금융] 잘못 설계된 보험 제도가 도덕적 해이·시장실패 불러

입력 2024-06-17 10:00   수정 2024-06-17 15:20

현재 판매 중인 4세대 실손보험의 보험료가 다음 달부터 비급여 이용량에 따라 갱신 시점에 할인·할증된다.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 수령액이 없다면 보험료를 5%가량 할인받지만 수령액이 300만원 이상이면 보험료가 최고 300% 올라간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7월부터 비급여 과잉 진료 방지를 위해 4세대 실손보험의 비급여 보험료를 5등급으로 나눠 차등 적용한다고 6일 밝혔다.

- 2024년 6월7일자 한국경제신문 -

정부가 과잉 진료 문제를 막기 위해 실손보험의 보험료 산정 방식을 바꾼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실손보험은 피보험자가 부담한 의료비의 일정 금액을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으로 가입자가 4000만 명에 달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립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가입해 매달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실손보험은 대표적 만성 적자 상품으로 꼽힙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1조9700억원에 달했습니다. 보험상품의 수익 구조를 보여주는 손해율은 103.4%를 기록했습니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이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실손보험은 보장률이 치료비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중증 질환에 걸린 환자의 실질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999년에 도입했습니다. 보장률이 전체 의료비의 60% 수준에 그치는 건강보험의 한계를 보완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질병이란 ‘불운’을 막아준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실손보험은 설계 당시부터 적자가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손보험은 출시된 시기에 따라 1세대에서 4세대로 나뉩니다. 2009년 9월까지 판매한 1세대 실손보험은 본인부담금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통원 치료 기준으로 1일 한도 30만원 이내면 진료비 전액이 실손보험으로 보장되는 구조였지요.

이때부터 한국에선 ‘비급여’ 과잉 진료 문제가 불거집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본인이 진료비 전부를 내야 하는 항목입니다.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등에서 척추 교정 등을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도수치료, 백내장수술 과정에서 이뤄지는 다초점렌즈 삽입술 등이 대표적이지요.

진료비가 얼마든 전액 보장되는 실손보험의 등장은 의료 시장에서 환자와 의사 모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킵니다.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는 감춰진 행동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정보를 가진 측이 정보를 갖지 못한 측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도수치료는 병원마다 가격이 10만원대에서 20만~30만원까지 천차만별입니다. 환자들은 마치 마사지를 받듯이 도수치료를 이용하고, 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물리치료에서 도수치료까지를 하나의 패키지처럼 판매하고 있습니다. 청구 금액이 얼마든 환자 입장에선 부담이 없고 의사로서도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높일 수 있어 이득이다 보니 서로가 진짜 정보를 숨기고 과잉 진료 속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잉 진료 비용은 고스란히 보험사에 전가되고, 대규모 실손보험 손실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초기부터 실손보험의 설계가 잘못된 탓도 큽니다. 보험시장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 횟수와 액수 등에 따라 보험료의 차등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본인부담금이 낮을수록 보험료도 그에 맞춰 높아져야 하지요.

하지만 실손보험은 2021년 도입된 4세대 실손보험에 와서야 ‘쓴 만큼 내는’ 원리가 적용됐습니다. 2009년 2세대, 2017년 3세대 실손보험이 도입되면서 당초 0%였던 본인부담률이 각각 10%, 20~30%로 높아지고 연간 한도 등이 설정됐음에도 과잉 진료를 막지 못하자 제도 도입 22년 만에야 뒤늦게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경제적 원리가 적용된 것이지요. 앞서 언급된 기사에서 제시한 내용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들을 보강하는 실손보험 개혁에 착수했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재 4세대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약 300만 명 수준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이미 계약이 이뤄진 1~3세대 실손보험을 손대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요. 한 번의 잘못된 제도 설계가 교정될 수 없는 시장실패를 부른 대표적 사례입니다.

황정환 기자
NIE 포인트
1. 도덕적 해이의 의미를 알아보자

2. 실손보험 시장에서의 도덕적 해이를 분석해보자

3. 실손보험 문제의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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