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온라인 직구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서 함께 돈을 벌자’며 접근하는 신종 로맨스스캠(연애빙자 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30~40대 이상 독신 남성으로 여성 사진을 도용하는 사기꾼 유혹에 속아 구매대행에 사용할 ‘사업비’를 입금했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상형이네요. 같이 돈 벌어요"
전주 완산경찰서는 30대 남성 윤 모씨의 알리 구매대행 금액 7000여만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A씨를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SNS를 통해 윤 씨에게 자신이 ‘홍콩 국적의 30대 여성 사업가 장씨’라며 접근했다. 미모의 여성 사진을 앞세웠다. 그는 전혀 돈 얘길 하지 않은 채 ‘내 이상형이다’, '한국에서 만나자'며 수차례 메시지를 보냈고, 윤 씨는 그에게 어느새 마음을 빼앗겼다.
관계가 어느정도 무르익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가짜 알리 플랫폼 링크를 보내며 “함께 돈을 벌자”고 유혹했다. 장씨는 구매대행 사이트에 달러를 입금하면 문구용품이나 렌즈 등 특정 상품을 팔 수 있고, 자본을 댄 윤씨에겐 판매액의 6~11%가량의 수익 주겠다고 했다. 이를 ‘알리 2차 구매대행’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참여 초반엔 실제 수익이 나기도 했다. 윤 씨는 지난달 14일 생활용품 판매 수수료, 11만원을 출금했다. '더 도와달라'는 장씨의 말에 그는 약 7000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지난달 17일부터 수익금 출금이 막혔고, 장씨에게 연락했지만 ‘출금을 위해서는 돈을 더 입금하고 물건을 더 팔아야 한다’고 답변을 받았다. 그제서야 윤 씨는 모든 게 사기임을 깨달았다.
'신종' 로맨스 스캠, 추가 피해 사례도
온라인 상에는 윤 씨와 비슷한 ‘알리 로맨스스캠’을 당했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윤 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똑같은 수법의 사기 피해자만 30여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알리 플랫폼과 똑같이 생긴 플랫폼에서 물건 판매, 정산 등이 이뤄지는 것처럼 정교하게 표시되있다보니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들이 이른바 ‘장씨’에게 당한 피해만 수억원에 달한다. 경찰은 이 수법이 새로운 유형의 로맨스스캠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가짜 플랫폼, 판매자 페이지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공범 여러명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관계를 쌓아나간 후 ‘돈이 없으니 도와 달라’는 기존 사기 문법에서 벗어나 ‘같이 돈을 벌자’는 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새로운 로맨스스캠”이라고 했다.
영미권에서 활발한 로맨스스캠은 한국에선 주요 사건 유형이 아니었지만,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로맨스스캠 관련 상담 건수는 2019년 22건에서 올해는 88건으로 4배 증가했다. 국가정보원이 추정한 피해액도 2020년 3억2000만원에서 지난해 39억6000만원으로 12배가량 늘었다. 신고율이 낮은 특성상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 관계자는 “심리를 노린 사기가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며 “라인이나 텔레그램과 같은 익명 SNS로 여성이 친해지자며 접근할 땐 의심부터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윤 씨 등 피해자들은 "로맨스 스캠 사기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윤희근 경찰청장이 22대 국회에서 통과를 약속한 '다중사기피해방지법'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며 "사기기통합신고대응원이 설치돼 고도화되고 있는 수법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희원/안정훈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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