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이 넘는 기자가 모인 서울 서린동 SK서린빌딩 3층 ‘수펙스홀’에 일순 정적이 흐른 건 시계가 오전 10시40분을 가리키던 때였다. 예정에 없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단상에 올랐기 때문. 당초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달 30일 나온 최 회장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에 대한 오류를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사장)이 설명하는 자리였다. 항소심 판결은 SK그룹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회사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날 아침, 마이크를 잡겠다고 했다.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서 비롯된 만큼 직접 나서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란 이유에서다. 단상에 올라 한동안 입을 떼지 못하던 최 회장은 “개인적인 일로 국민께 심려를 끼친 점 사과드린다”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변호인단과 함께 항소심 재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렇게 계산하면 선대회장이 이끌던 1994~1998년엔 기업 가치가 12.5배 성장했고, 최 회장이 경영한 1998~2009년엔 355배 커진 셈이 된다. 여기에서 노 관장이 자신의 기여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시기는 최 회장이 경영을 맡았을 때다. 이른바 ‘내조 기여분’이다. SK㈜ 보유 주식이 최 회장 재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다보니 노 관장 분할 몫은 1조3800억원(최 회장 보유재산 4조115억원의 35%)으로 산정됐다.
문제는 2007년(20 대 1)과 2009년(2.5 대 1) 두 차례에 걸쳐 SK C&C 주식을 50 대 1로 액면분할했다는 데서 나온다. 이를 토대로 다시 계산하면 1998년 주당 가치는 100원에서 1000원으로 10배 불어난다. 선대회장이 125배, 최 회장은 35.5배 키운 셈이 된다. 최 회장 기여도가 10분의 1로 낮아지면 노 관장 분할 몫도 그만큼 줄여야 한다는 게 최 회장 측 주장이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런 오류를 인정해 이 부분을 최 회장 측 주장대로 고친 ‘판결 경정 결정’을 이날 양측에 보냈지만, 정작 재산분할 금액은 그대로 뒀다.
최 회장 법률대리인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재판부는 잘못된 숫자에 근거해 최 회장이 상속받은 부분을 과소 평가하면서 최 회장을 사실상 창업을 한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단정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 측은 “단순히 산식 오류를 고치는 걸로 끝날 일은 아니다”며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판결의 실질적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단순 경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당시 정부 내에서 힘이 약한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장비업체의 통신서비스업 진출 금지 법안을 추진했고, 힘센 부서는 막으려고 했었다”며 “대통령이 지원했다면 이런 그림이 나왔겠는가”라고 반문했다. SK그룹은 노태우 정부 때 이동통신 민간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특혜라는 비판에 부딪혀 사업권을 반납했다. SK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한 건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이다.
SK그룹은 6공화국 기간에 특혜가 없었다는 걸 당시 10대 그룹의 매출 증가율로 설명했다. 재계 5위였던 SK그룹의 성장률은 1.8배로, 10대 그룹 중 9위였다. 6공 시절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그룹은 대우(4.3배)였다.
김형규/민경진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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