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여당이 극우정당 AfD에 밀려 3위로 전락해 조기 선거 요구에 직면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다음달 4일 총선에서 2016년 브렉시트 이후 총리가 네 번이나 바뀌는 난맥상에 대한 국민적 심판에 직면할 전망이다. 현지 여론조사 업체들은 14년 만에 정권을 노동당에 내줄 것으로 보고 있다.
11월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6개 스윙스테이트 중 5곳에서 고전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G7 정상회의 참석 기간 중 지지율이 역대 자민당 총리 가운데 최저인 10%대로 떨어지는 굴욕을 겪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G7 정상들의 단체 사진이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느낌으로 다가온 이유다.
주요 선진국의 기성 정치권을 강타한 핵심 이슈는 이민정책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다. 그중 갈수록 커지는 반이민 정서는 극우정당과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자양분을 넘어 기존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그동안 유럽 내 좌우파 정당은 암묵적 ‘봉쇄 전략’(Cordon sanitaire)을 통해 극우 정치인과 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와 반이민 정서의 심화는 이 같은 전략의 효용성을 약화시켰다.
EU 의회 선거 결과는 주류 권력의 ‘봉쇄 전략’이 사실상 정치적으로 사망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20~30대 젊은 층이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정당으로 돌아선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외국인 아웃’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더 이상 이민자들과 일자리, 주택을 두고 경쟁할 수 없다”며 주류 정치세력에 반기를 들었다.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연합의 청년 지지율은 5년 전 선거에 비해 10%포인트, 독일 AfD는 11%포인트 수직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정책을 두고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갈등은 우리에겐 아직 생경한 이슈다. 상대적으로 이민에 폐쇄적인 한국에선 이민보다 양극화 등 경제적 불평등이 훨씬 중요한 현안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생과 고령화 속도에 국내에서도 외국인 근로자 확대를 넘어 이민정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 거론된 이민청 설립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경제 활력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외국인 인력의 국내 정주 등을 포함한 이민 확대는 시간문제다. 법무부는 지난해 숙련기능인력(E-7-4) 비자 쿼터를 3만5000명으로 대폭 늘렸고, 비전문취업(E9) 비자의 체류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하는 등 장기 근로자의 정주 여건을 완화하고 있다. 유럽의 이민정책도 초기에는 일손 부족을 메우기 위한 저임금 노동자에서 출발해 점차 이민으로 옮겨갔다.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의 온상이 되고, 사회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이란 낙인이 현재 유럽과 미국의 이민 갈등을 심화시킨 주요 요인이다. 일손 부족에서 이민으로 이어지는 정책이 미래의 사회·정치적 뇌관이 되지 않도록 유럽 등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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