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서늘하게 불볕더위 바라본 해외 신예들

입력 2024-06-18 18:12   수정 2024-06-19 00:16

해외 신진 작가들이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국 미술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프랑스의 마르게리트 위모(38·왼쪽)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파라 알 카시미(33·오른쪽)는 국내 첫 개인전을 통해 등골이 서늘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예술로 되살린 20만 평 황무지
198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위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화이트큐브에서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 ‘더스트(dust)’를 열었다. 미국의 버려진 농지를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 연작과 조각 7점, 수채화 4점을 선보였다. 흙먼지와 거미줄 등 황폐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겼다.

지난해 작가는 기후변화가 뚜렷한 미국 콜로라도의 산루이스 협곡을 찾았다. 움푹 팬 황무지가 지금과 미래를 잇는 ‘차원 관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광활한 벌판에 키네틱 조각 84점을 설치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은 황야에 서식하는 생명체의 상호 연결성을 상징한다. 위모는 그렇게 65만㎡(약 20만 평) 규모의 대지 미술 ‘기도(Orisons)’를 만들었다. “대지 위 모든 게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의 사체와 바람, 파리 한 마리까지도 제 작품의 일부예요.”

이번 전시는 ‘기도’와 궤를 같이한다. 사막처럼 메마른 대지를 촬영한 사진 사이로 이들을 연결하는 조각을 배치했다. 조각들은 거미줄이 쳐진 듯 그물에 감싸진 모양새다. 거미줄 안에는 귀향길이 막힌 철새, 인간이 길들인 가축 등이 갇혀 있다. 작가는 이런 구성을 ‘3차원 뜨개질’이라고 이름 지었다.

위모는 조각에서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며 자연의 찰나를 강조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우연한 조각(Chance Piece)’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황무지에 들어선 그의 조각은 바람에 의해 흩날리고 세월에 의해 빛이 바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앞으로 척박해질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삶의 나침반”이라고 설명했다.

위모는 지난해 9월 화이트큐브 서울점 개관 기념 그룹전에서 새하얀 흰개미 집 조각으로 처음 존재를 알렸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대형마트의 ‘가짜 태양’들
국내에서 걸프 지역의 현대미술을 만나볼 기회는 좀처럼 드물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쉽지 않은 문화권의 ‘여성 사진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서울 소격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린 파라 알 카시미의 첫 개인전은 그의 최근 사진 작품 19점과 영상을 한번에 만나볼 기회다.

그는 UAE에서 태어나 17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카시미는 일찌감치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았다. 지난해 LG전자가 미국 구겐하임미술관과 함께 선정한 ‘올해의 신예 아티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테이트 모던, 퐁피두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는 인터넷과 기술이 발달하며 나타나는 환경 문제와 가상현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전시 제목 ‘블루 데저트 온라인’은 한국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검은 사막’에서 따왔다.

온라인 게임에서 태양은 유토피아나 목표 지점을 상징하지만 카시미의 태양은 다르다. 태양처럼 생긴 물체 중 일부는 마트에 진열된 오렌지나 망고, 전구 등이다. 그의 작품에서 태양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나타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자연의 경고를 전하지만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뉴욕의 일몰을 촬영한 사진 속 태양이 다른 작품보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시는 8월 11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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