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관계 '격상'…결제 체계 만들어 서방제재 우회

입력 2024-06-18 18:29   수정 2024-06-19 01:07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18일 1박2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의 방북이다. 두 사람은 19일로 예정된 회담에서 현재 ‘선린 우호 관계’인 북·러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계획이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단일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 당일 북한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해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달러 배제 맞서 루블 결제 합의할 듯
북한과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달러화 중심 국제금융과 무역 질서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원래 북한과 이란만 배제돼 있었는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은행들도 SWIFT에서 빠졌다. 이번 회담을 통해 이런 제재망을 우회하는 양국의 독자 결제 체계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국은 러시아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를 주로 사용하는 결제 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경제공동위원회에서 양국 무역의 주요 통화로 루블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의 달러 선호 경향이 뚜렷했고 양측의 무역량이 많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북한에서 기축통화로서 루블화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은 이번 회담에서 양국 외교 관계를 크게 격상하기로 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두 사람이 19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과 러시아는 2000년 맺은 ‘북·러 조약’을 통해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다. 통상 러시아의 외교 관계에서 선린·우호 관계는 동반자 관계나 동맹 관계보다 낮은 급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포괄적’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제한 없이 협력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만큼 북·러 관계는 한·러 관계보다 한 단계 위에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러시아가 외교 관계를 설정할 때 다양한 수사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책하며 ‘밀담’ 나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극동 지역인 사하공화국 야쿠츠크를 방문한 뒤 이날 밤 12시께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통해 방북했다. 19일에 베트남으로 떠나는 만큼 북한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 미만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일에는 회담에 앞서 6·25전쟁 당시 전사한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에 헌화할 계획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할지도 관심사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이 산책하며 ‘밀담’도 나눌 계획이라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국제사회는 두 정상의 만남에 우려를 나타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6·25전쟁 이후 미국 국가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CSIS 웹사이트에 올린 기고문에서 “김정은은 러시아에 전쟁 비축품을 무제한 공급하는 대가로 핵잠수함 기술, 군용 위성 기술, 최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등을 원하며 이는 한반도·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본토에 가하는 직접적 위협을 고조시킨다”고 썼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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