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정중한 책도 드물다. 내용과 격식 다 그렇다. 간결하게 핵심을 짚으면서도 최대한의 예의로 입법을 호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 번째 제안인 최저임금 개선안을 보자. 매년 이맘때 연례행사로 비슷비슷한 논쟁이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 현안을 이렇게 정리했다.
앞쪽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는 중소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빠르게 인상돼온 한국 최저임금의 연원 정리로 시작한다. 최근 6년(2018~2023)간 49.7%의 누적 인상률이 G7 국가와 개별로 비교해보면 많이 높다는 사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업종별 지불 능력 차이, OECD에서 19개국이 업종·지역·연령별 구분 적용(차등화)하고 있다는 점,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문제점도 요약돼 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세 의원의 최저임금법 개정안 내용과 불발 과정까지 있다. 뒤쪽 ‘22대 국회에서 해결해 주십시오’에는 산업계의 희망 사항이 세 가지로 요약돼 있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지불 능력 포함, 업종·지역 구분 적용이 가능하도록 법제화, 객관·합리적 기준을 통한 정부 책임 방식으로 결정 프로세스 변경 등이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이 책자를 뜯어보면서 세 가지 관점을 생각해본다. 첫째, 전문가그룹에 대한 한국 사회의 존중은 어느 정도인가다. 전문 경제단체 간판을 수십 년간 걸어온 경총만이 아니다. 한국은행도 있고, KDI 같은 국책 연구기관도 의미 있는 성과물을 꾸준히 내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물론 정부도 이런 노작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의문이다. 고용과 노동, 공적보험 개선 논의에서 경총 제안이 다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체계적인 대안과 절절한 외침에 관계당국이 최소한 귀는 기울여야 한다. 법원도 예외가 아니고, 언론도 자성할 대목이다. 매사 진영 대결에, 논리·합리·객관·과학은 뒷전이고 감정·감성·선동이 넘치면 발전은 없다.
둘째, 국회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돼 있느냐다. 사회적 먹이사슬의 정점에 국회 권력이 똬리 튼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경총 건의 책자에서 재확인할 뿐이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산정 제안에서도 ‘차등화’라는 표현은 아예 없다. 거대 야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통상적 수준 이상의 자세 낮추기에 당혹감이 생길 정도다. 다른 경제 관련 단체나 협회의 대국회 건의집이 대개 그렇다. 정당한 권위와 합리적 권능 이상의 고압적 권력 행사를 독재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어떤 존재인가.
셋째, 합리적 대안과 건설적 제안은 산처럼 쌓이는데 정책과 제도는 왜 혁신을 못하느냐다. 이런 질문이 반복되면 국가는 퇴행한다.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의 두 바퀴를 함께 굴려온 한국의 성장 엔진에 치명적 고장이라도 생겼나. 속된 말로 ‘키워서 잡아먹는다’고도 하는데 기업 규제입법을 보면 그 반대다.
절대 왕조시대 상소문을 연상케 하는 대국회 제안문을 보면 ‘다원화 사회 민주 한국’은 멀었다. 한국의 좌파가 변하지 않는 건지, 구름 위 선비 공론가들의 관존민비 사농공상 관념이 여전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우리 경제는 위정자들이 여유 부릴 만큼 한가롭지 않다. 수치·통계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한국 주식은 줄줄이 팔고 미국 주식을 대거 사들이는 ‘투자 런’ 자본 이탈이 무섭지도 않나. 올 들어 개인은 11조원어치 한국 주식을 순매도했고, 미국 주식은 110조원어치 이상을 갖고 있다. 이걸 단순히 개미들의 재테크라고 본다면 오판이다. 왜 최소한의 위기감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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