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턱을 넘어가던 이달 초, 우연히 서울 서초동을 지나다 한 갤러리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어머니의 기원>을 쓴 여성 작가 시리 허스트베트. 얼마 전 별세한 폴 오스터의 아내다. 오스터의 부고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초상화 속 눈동자가 유난히 공허해 보였다. 유화인데도, 신기하리만치 투명했다.
발걸음을 옮기자 조앤 디디온, 마거릿 애트우드, 토니 모리슨(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매기 넬슨까지 명료한 사상으로 세상을 움직여온 스토리텔러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림을 그린 이는 30년간 이 작가들의 글을 번역해온 김선형 씨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해외 문학가들의 마음을, 글자와 문장으로 수없이 마주했을 사람. 김씨는 1년 전 어느 날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구띠갤러리에서 1일부터 열흘간 열린 첫 전시의 제목은 ‘나를 통과한 여자들’이었다. 전시를 마친 그를 서교동 홍대 인근의 20㎡ 남짓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딸이 미술을 전공해 소묘용 연필은 많이 깎아줘 봤지만 저 자신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1년 전쯤 불현듯 드로잉부터 시작했습니다. 아크릴화와 유화에는 완전한 실패란 없음을, 조앤 디디온을 덧칠하며 배웠죠.(웃음)”
이날 그는 비비언 고닉의 얼굴을 칠하고 있었다. 이젤 뒤로 여러 색의 물감들, 컬러 마커, 색채 혼합에 관한 이론서가 눈에 띄었다. 출판사와 독자들로부터 인정받는 번역가가, 손에 물감을 잔뜩 묻힌 채 고닉의 초상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이라니. 고닉은 여성해방 운동가이자 일인칭 저널리즘을 창안해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김씨는 최근 그의 세 번째 선집 <끝나지 않은 일>을 번역했다. 이번 선집은 고닉이 과거 읽었던 책들을 나이가 들며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읽어내려간 경험을 담고 있다. 번역가 역시 자신이 30년에 걸쳐 번역한 작가들을 다른 방식, 즉 그리기를 통해 읽어내고 있었다.
“나를 통과했다고 표현했지만, 어떤 작품은 내가 번역을 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희미했어요. 나를 그저 뻥 뚫고 간 작품도 물론 있었죠. 작품과 작가를 다시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 방식 중 하나가 초상화 그리기였죠.”
30년 번역 인생을 뒤흔들 만한 마음의 소리가 뭐였을까. 지난해 그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초몰입 상태였지만, 그것을 벗어났을 때 우울과 공황이 찾아왔다. 그 후 마음을 다스리는 일, 해보고 싶은 일은 꼭 해보자는 신념이 생겼다. 그는 자신이 주로 번역해온 여성 작가들의 작품 분위기와 상징성을 인물의 표정과 배경에 담으려 했다.
첫 전시를 앞두고 어떤 작가를 나란히 보여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애트우드와 모리슨의 초상 전시는 대조적이면서도 어울리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현대 영미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사람. 애트우드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데 탁월했다면 모리슨은 마이너리티 문제에 깊이 천착하며 작금의 지옥을 꼬집는 데 능했다.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세상을 장악한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그 때문에 애트우드는 마녀로 여겨지기도 하고, 책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런 맥락을 담듯, 애트우드 초상의 배경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빨갛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미소도 좀 섬뜩하다. 바로 옆 모리슨의 초상은 검은색에 초록색이 섞여 들어간 상반된 느낌이다. ‘소외된 이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린 작가를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성녀들이 보여온 옆얼굴 구도를 차용했다. 그의 대표작 <솔로몬의 노래>에서처럼 모리슨의 모습은 악을 극복해낸, 존엄한 인간의 초상 그 자체였다. 두 작품 모두 김씨의 번역을 거쳐 한국 독자에게 왔다.
긴 세월 그가 번역해온 작가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자신을 통과한 여자들의 초상을 계속 그려나갈 계획이다. 20일 그가 번역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의 어록을 담은 책 <테일러 스위프트>도 출간됐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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