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여운, 드보르자크 교향곡 3번…체코 국민맥주 '부드바이저' 닮았네

입력 2024-06-20 18:59   수정 2024-06-21 02:47

2000년대 초 세계맥주 전문점이 유행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인테리어로 바(bar) 중앙에는 얼음 더미 속 여러 종류의 맥주병이 가득했다. 그때 인기 있던 맥주는 하얀 라벨에 빨간 글씨가 새겨진 ‘버드와이저’였다.

대학생이 돼 외국 맥주를 처음 접한 2001년의 나는 종업원이 설명해준 대로 한동안 그 맥주를 체코 맥주라고 알고 있었다. 돈이 생기면 세계맥주 전문점에서 ‘버드와이저’로 유럽 감성을 마신다고 폼을 내다가 문득 뒷면 라벨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원산지가 미국이라니. 독일 출신 양조업자가 체코 체스케부데요비체, 독일어로 ‘부트바이스(Budweis)’에서 배운 공법으로 미국에서 성공하는데, 부트바이스의 미국식 발음이 ‘버드와이저(Budweiser)’란다.

현재 체코에서 이 맥주는 국영 양조장 ‘부드바이저 부드바르(Budweiser Budvar)’에서 만들며 국민 맥주로 사랑받고 있다. 상표권 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지 일부 지역에서는 원지역명을 체코어 그대로 사용해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로 판매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체코에서 마신 ‘부드바이저’는 ‘버드와이저’와 전혀 달랐다. 발효 시 높은 알코올 함량을 갖도록 만든 후 저장할 때 정제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는 하이그래비티 공법의 미국 ‘버드와이저’와 전통 방식으로 양조하는 체코 부드바이저는 서로 길이 다른 맥주였다.

체코 부드바이저는 단순할 정도로 아름다운 금빛을 띤다. 풍부한 거품을 지나 금빛 물을 마실 때 첫 느낌에는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탄산의 쏘는 맛 대신 은은함이 있다. 체코 민속 음악의 우수에 찬 활기처럼 홉의 쌉쌀함과 맥아의 달콤함이 있다. 마지막엔 체코의 한적한 마을을 여행한 뒤 숙소에서 느긋하게 석양을 바라보는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쩜 이리 드보르자크와 닮았을까? 체코 유산을 간직하고 슬라브 민속 음악의 향기를 간직한 그의 음악에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순하리만치 아름다운 선율, 색채감 있는 풍부한 화음, 보헤미아 민족의 향수가 녹아 있다.

나는 이따금 연주회 프로그램에 작곡가들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바로 이전 작품을 올리곤 한다. 대가들이 성공하기 이전 작품이 지닌 날것에 매력을 느껴서다. 아직 원숙미나 대중이 요구하는 맛은 적지만 젊은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품고 있다. 1873년과 1874년은 드보르자크에게 그런 시기였다. 결혼도 하고 오스트리아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작곡가로서 새로운 대문이 열린 때였다. 오랜 멘토이자 지원군이던 심사위원 요하네스 브람스와도 처음 만났다.

위대한 시작을 가져다준 날것의 모습이 교향곡 3번에 담겨 있다. 체코 거장 스메타나의 지휘로 이뤄진 교향곡 3번의 초연은 드보르자크에게 매우 뜨거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재미나게도 스메타나는 맥주 양조업자의 장남이었다!) 부드바이저의 행복하고 깔끔한 여운처럼 드보르자크는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했다. 그런 따뜻함이 묻어 나오는 그의 음악들이 나는 좋다.

지휘자 지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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