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근 건축가 "용산 개발은 시작일 뿐…유럽식 '보행권 도시'가 서울 속으로"

입력 2024-06-20 18:14   수정 2024-06-21 00:40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거주지에서 걸어서 직장에 다니고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직·주·락’(업무·주거·여가) 보행일상권을 서울 50여 곳에 조성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일 만난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건국대 건축공학과 명예교수)는 인터뷰 내내 ‘보행일상권’을 강조했다. 서울이 ‘직·주·락 첨단도시’로 변화하기 위해 걸어서 30분 거리에 일과 집,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서울의 공간 전체를 기획하는 최고 전문가다. 시의 도시건축 정책 및 공간환경 사업 전반을 총괄 기획하고 조정하는 게 그의 업무다. ‘그레이트 한강’과 ‘용산국제업무지구’ ‘노들섬 재조성’ ‘상암 대관람차 조성’ 등 굵직한 사업이 그의 손을 거쳐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강 총괄건축가에게 미래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보행일상권 조성 계획을 들어봤다.


서울은 오세훈 시장이 약 10년 만에 시장직에 복귀한 이후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아파트 높이를 최고 35층으로 제한한 ‘35층 룰’을 폐지하고, 역세권 용적률 규제를 파격적으로 완화했다. 용도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복합 용도로 도시를 개발하는 ‘비욘드 조닝’ 제도를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서울 곳곳에 적용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2021년 4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된 그는 이 같은 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첫 임기 2년은 실제 사업지와 현안을 위주로 문제를 풀었다면 지난해 6월 연임 후에는 ‘시스템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 ‘100년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과 정권 교체 등 외부 상황 변화로 도시계획 기조가 바뀌어선 도시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글로벌 주요 도시와 비교했을 때 서울은 활용 가능한 밀도(단위면적당 가구 수)의 절반밖에 쓰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임 후 서울지역 모든 필지의 용적률 평균을 내보니 80~90%에 그쳤다”며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는 15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60%포인트나 더 쓸 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용적률은 한 동네에서도 공평하게 적용할 수는 없는 개념”이라며 “옆집에서 용적률을 사 와서 건물을 더 높게 올린 후 추가로 나온 이익을 공유하는 식으로 고밀 개발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등 수도권은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한 팽창보다는 밀도 있는 개발이 더 적합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도시가 팽창하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가장 힘들다”며 “에너지 낭비와 대기오염 등으로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남는 밀도를 활용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범위 안에 직장과 집과 여가가 충족되는 보행일상권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공간 계획적으로 직경 4㎞, 반경 2㎞를 30분 보행일상권으로 본다. 올초 개발 청사진을 발표한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해 종로구 세운지구, 도봉구 창동 차량기지, 성수·왕십리 일대 등이 대표적인 보행일상권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서울 면적과 역세권 수 등을 고려하면 보행일상권 50곳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올해 우선 10개 지역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보행일상권이자 서울시의 역점사업인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대해서는 촘촘한 관리계획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업은 민간 사업자가 원하는 용도와 규모로 개발하는 ‘화이트 사이트’ 방식을 국내에서 처음 적용한다. 그는 “민간이 백지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화이트 사이트 방식이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신뢰”라며 “먼저 계획을 잘 세워야 하고 촘촘한 관리 계획, 공공 차원의 독립된 관리 주체 등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35층 룰’이 폐지된 후 초고층 경쟁이 불붙고 있는 민간 재건축·재개발에 대해선 “민간과 공공의 이익에 모두 부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서울은 15층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밀도”라며 “49층만 돼도 건축 규제가 확 달라져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48층이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 도곡동 타워팰리스처럼 희소가치가 있어야 부가가치가 나오는 것이지 ‘초고층이라서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일축했다.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려면 적절한 높이 계획을 통해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층이 한 동 올라갈 때 사이사이에 15층, 25층을 적당히 배치하는 등 중층과 저층이 일정 비율 이상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며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은 서울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총괄건축가는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건축 및 공학박사 과정을 마쳤다. 장애인, 노인 등 약자를 위한 무장애 건축을 평생 연구한 선구자로 꼽힌다. 서울시 건축위원회와 도시계획위원회, 공원위원회 등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서울뿐 아니라 한려해상국립공원 외도, 제주 에코랜드, 가평 프랑스문화촌 등도 설계했다.

박진우/이유정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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