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슬 한 병에 8000원 넘더니…'짝퉁 소주' 판친다 [현장+]

입력 2024-06-21 14:29   수정 2024-06-21 15:57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한 기업형슈퍼마켓(SSM). 주류 코너의 3분의 1 이상을 소주가 차지했다. 'OO에 이슬'이라는 이름의 하이트진로의 과일소주들이 가장 눈에 띄는 단독 매대를 차지한 가운데 나머지 소주들도 비슷한 디자인에 한글 라벨이 붙어 있었다. 영락없이 한국 소주처럼 보였는데 제조사를 확인하니 동남아 제품이었다.

'타완당 1999'라는 태국 회사에서 만든 ‘태양’ 소주는 초록색 병에 색색깔 뚜껑 색상과 라벨에 붙은 과일 그림까지 진로 소주와 유사했다. 딸기, 자몽, 복숭아, 포도 등 다섯 가지 맛 종류와 도수도 13도로 동일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맛과 품질이 떨어지는 짝퉁(가품) 소주가 판을 치면서 한국산 소주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한류 열풍이 불면서 'K소주 붐'이 일고 있지만, 이를 겨냥한 '짝퉁 소주'가 급증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산보다 가격이 30% 이상 저렴해 현지인들이 가품 소주에 더 쉽게 접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맛과 품질이 떨어지는 짝퉁(가품) 소주가 판을 치면서 한국산 소주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1억141만 달러로 전년 대비 8.7% 증가했다. 소주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넘어선 건 2013년(1억751만 달러) 이후 10년 만이다. 한국 문화가 각광 받자 한국을 상징하는 소주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남아 지역으로의 수출이 호조세인데, 국가별로 보면 일본과 뒤를 이어 베트남(793만 달러), 필리핀(447만 달러), 말레이시아(223만 달러) 등이다. 이처럼 소주 최대 수출국이 주로 포진한 동남아 지역에서 짝퉁 소주가 판을 치면서 한국 소주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황정호 하이트진로 해외사업본부 전무는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유사 소주가 넘쳐난다”며 “베트남만 해도 유사 소주가 27개 브랜드, 170가지 종류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태국 등에서 주로 유통되는 짝퉁 소주는 국내산의 60~70% 가격대에 주로 팔린다. 국내산보다 원가가 현저히 낮아 현지 술집 등 유흥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가 확산하는 추세다. 현지 시장에서 소주는 고급 주류로 인식된다. 베트남 주점에선 평균적으로 소주를 한 병당 15만동(약 8145원)씩 받는다. 현지 과실주나 보드카보다 3~4배 비싼 가격이다. 최근 현지 젊은 층 사이에서 파티나 회식, 데이트 등 특별한 날 소주를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짝퉁 소주를 팔면 국내산 대비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다.

이같은 가짜 소주 제품들이 한국 소주병과 같은 360ml 녹색 병에 한글 라벨을 부착시키고, 공식 사이트 주소를 한국식(kr)으로 쓰는 등 국내산과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유사 소주 시장에 보드카로 유명한 스미노프와 싱가포르 타이거맥주 등 현지 대기업들까지 뛰어 들면서 해외 여러 국가로 수출되는 양상도 나타난다”며 “대부분 맛과 위생, 주질이 보장되지 않는 조악한 제품이 많아 한국 소주 품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질까 걱정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주류업계는 국세청과 협업해 ‘한국소주 인증마크’를 논의 중이다. 수출 주류에 ‘K-술(K-SUUL)’이라는 라벨을 붙여 우리 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가짜 한국 주류제품과도 구별하자는 전략이다. 국내 주류기업들은 현지 판촉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체인형 대형마트, 편의점을 중심으로 주류 단독매대를 구성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현지 주점이나 클럽, 펍 등 유흥채널을 돌며 시음 기회를 늘리는 식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주가 한국 프리미엄 주류라는 브랜드화를 위해서도 가짜 소주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노이=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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