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텐, 지오지아 등 패션브랜드를 운영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신성통상이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한다. 이 회사 계열사이자 대주주인 가나안, 에이션패션이 상장 유통 물량을 공개매수하는 조건이다. 배당 확대를 요구해온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어 상장폐지가 가능한 수준까지 지분율을 높이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신성통상의 대주주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21일 “신성통상 지분 중 시장 유통 물량 22.0%를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했다. 공개매수 기간은 이날부터 다음달 22일까지로, 매수 가격은 주당 2300원이다. 신성통상의 급등 전 종가(지난 19일 1842원)와 비교하면 24.9% 높은 가격이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가방, 옷 등을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신성통상 지분을 각각 42.1%, 17.7% 보유하고 있다. 염태순 신성통상 창업자의 장남 염상원 씨가 가나안 지분을 82.4%, 가나안이 에이션패션 지분을 46.5% 갖고 있어 신상통상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계열사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신성통상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상장사로서 받아야 하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성통상은 지금까지 배당을 거의 하지 않아 소액주주의 주주환원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배당 여력과 연결되는 이익잉여금(지난 3월 기준 3096억원)도 충분하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의 ‘총알’ 역시 넉넉하다. 두 회사의 이익잉여금 합계는 3611억원(지난해 기준)으로, 매입 대상 지분가액 728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증권가 전문가는 “일반 주주 지분을 모두 매입할 여력이 있는 만큼 굳이 상장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가 반발하는 점은 변수다. 이날 네이버의 신성통상 종목토론방은 “배당 확대 요구에 자진 상장폐지로 응답할 줄은 몰랐다”며 “절대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자진 상장폐지하려면 지분율을 95%까지 높여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동기 신성통상 이사는 “대주주 의지에 따라 2차 이상의 공개매수까지 갈 수도 있다”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할지, 잘 안될 경우 공개매수 가격을 높일지 등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내부자 정보 이용이 의심되는 공시 전 주가 급등이 이번에도 반복돼 논란이다. 외국인투자자는 자진 상장폐지 추진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20일 신성통상을 10억원어치 순매수했다가 이날 1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이 종목을 하루 10억원어치 이상 순매수한 건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정보를 사전 입수한 누군가가 외국계 창구를 통해 주식을 사전 매입해 상당한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목 주가는 19일 1842원에서 이날 2295원으로 이틀간 24.59% 올랐다.
양병훈/배정철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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