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가 지난 19일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대(對)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이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한·러 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베트남에서 “한국이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은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국은 21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자국산 무기를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황이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한·러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정찰위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첨단 무기 기술을 실제로 이전하고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면 우리 정부는 러시아가 ‘2차 레드라인’을 건넌 것으로 간주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0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라며 “구체적 방안은 러시아 측이 어떻게 응하는지에 따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한 상태여서 러시아가 한국의 개입이라는 변수를 만들고 싶어 하진 않을 것”이라며 “한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에 포탄뿐 아니라 자주포 탱크 등 정밀 타격 무기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카드를 활용해 러시아 군사 기술의 북한 이전을 막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반면 손상된 한·러 관계 회복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러시아가 한반도 정책에서 남북 등거리 외교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균형추를 북한으로 옮긴 건 분명하다”며 “당장은 어렵더라도 북극 항로, 동해 공동개발 등 경제 분야에서 협력 분야를 찾아 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달 말 실시되는 한·미·일 연합훈련 ‘프리덤 에지’가 새 북·러 조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늠해볼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약 3조는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침략 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면 가능한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목적으로 쌍무 협상 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이 한·미·일 훈련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에 협상을 요구하면 북·러가 연합훈련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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