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심해진 늑장 상장심사…이러고도 스타트업 육성 외치나

입력 2024-06-23 17:29   수정 2024-06-24 07:18

한국거래소의 늑장 상장심사 문제가 갈수록 태산이다. 상장 첫 관문인 상장예비심사를 규정에 명시된 ‘45영업일 이내’에 통과한 기업이 올 들어 단 한 곳도 없다. 규정 일정 준수 사례가 2021년 10곳(상반기 기준), 2022년 5곳, 2023년 4곳으로 쪼그라들더니 아예 실종됐다. 특히 바이오·헬스 분야에선 ‘상장 기다리다 망할 판’이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무한정 늘어지는 심사 탓에 상장을 자진철회하는 기업도 속출 중이다. 심사 기간에 전환사채(CB) 발행이나 유상증자가 금지돼 늑장 심사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버티기 힘들어서다.

상장을 철회한다고 해서 이들의 악몽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자본시장 진입 실패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벤처캐피털(VC) 등 다른 자금조달 경로마저 막혀버리기 일쑤다. 이럴 경우 바이오·헬스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개발(R&D)에 직격탄을 맞아 기업 존립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빠질 개연성이 커진다. 거래소는 ‘한정된 인력으로 신기술을 검증하기가 녹록지 않다’고 해명하지만 한가한 변명으로 들린다. 2021년 상반기 66.2일이던 바이오·헬스케어 상장심사 기간이 올 들어 126.4일로 두 배나 길어졌다. 이쯤 되면 태업에 가깝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거래소의 늑장 심사는 지난해 11월 ‘파두 뻥튀기 상장’ 논란이 불거진 뒤 더 심해지는 모습이다. 심사 부실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툭하면 변경하고 새로운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2월 취임한 거래소 이사장이 취임사에서 “상장심사의 전문성과 역량 강화”를 강조했지만 변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해외 거래처와 무리한 계약을 맺도록 요구하는 등 ‘면피 행정’이 더 심해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늑장 상장심사가 ‘은밀한 카르텔’의 결과라는 의구심마저 제기된다. 상장이 어려울수록 거래소의 권한이 세지는 점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퇴직 후 대형 로펌 등에 재취업해 상장 컨설팅에 종사하는 거래소 직원이 적잖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스타트업 육성을 강조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인프라 구축을 약속했다. 그러자면 상장을 기다리다가 탈진하는 일부터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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