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경(24)에게는 오랫동안 ‘준우승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거둔 뒤 무려 910일 동안 우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준우승만 아홉 차례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약 2년5개월 만에 준우승 세 글자에서 겨우 한 글자를 지웠지만, ‘우승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랬던 박현경이 올해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돌아왔다. 이제는 완벽한 승부사가 됐다. 지난달 매치플레이 방식으로 치른 대회에서 ‘시즌 3승’ 이예원(21)을 제압하고 빠르게 시즌 첫 승을 거두더니, 한 달여 만에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윤이나(21)와 박지영(28) 등 만만치 않은 선수들과의 연장 승부에서 승리하면서 통산 6승을 쌓았다.
“올해 대상 수상이 목표”라고 밝힌 박현경은 대상포인트 1위에 올라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총상금 14억원의 메이저급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상금 2억5200만원을 챙긴 박현경은 상금 랭킹에서도 1위로 올라섰다. 박현경은 “4차 연장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대회는 컨디션에 집중했는데, 컨디션이 좋으니 집중력도 높아지고 샷도 좋아져서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목표로 잡은 통산 상금 40억원 돌파에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아 좋다”고 덧붙였다.
3타 차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박현경은 송곳 같던 아이언 샷이 이날은 그렇게 날카롭지 못했다. 그린 적중률은 88.88%를 기록했지만, 핀과의 거리가 꽤 멀었다. 먼 거리 퍼트를 남겨놓다 보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버디 4개를 낚았지만 보기를 2개나 범해 2타를 줄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18번홀에선 약 50㎝의 짧은 거리 버디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박현경의 송곳 샷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빛났다. 3차 연장 때 그린 옆 러프에서 시도한 어프로치 샷을 핀과 1m 거리에 붙여 버디를 잡았고, 윤이나와 둘이 치른 4차 연장에서도 세컨드 샷을 그린에 올린 뒤 2퍼트로 마무리해 길고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두 번째로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지금의 박현경을 있게 했다. 박현경은 우승이 없던 2년5개월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내가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인가’라는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의 안정을 찾는 법을 찾아 나섰다. 그가 독서를 즐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책에서 와 닿는 대목을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주변의 도움도 컸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멘털이 흔들릴 때마다 스승인 이시우 프로와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박동현 넥스트크리에이티브 부장 등이 믿음을 불어넣었다. 이들의 계속된 조언은 박현경에게 버팀목이 됐다.
세 번째는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성장욕이다. KLPGA투어의 대표적 ‘육각형 골퍼’인 박현경은 드라이버는 물론 아이언, 웨지, 퍼터까지 14개 클럽을 골고루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드라이버였다. 박현경은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지난 전지훈련 기간 바벨 무게를 100㎏까지 올릴 만큼 근력 운동을 했다. 그 결과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가 지난해보다 약 5야드 늘었다. 이날 18번홀에서 열린 4차 연장에서도 2온에 성공할 만큼 남다른 비거리를 보여준 박현경은 ‘장타자’ 윤이나를 제치고 명품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었다.
포천힐스CC=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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