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와 소액주주, 장기투자자와 단기투자자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사회가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 경영진의 모든 의사결정에 법적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경영 판단에 대해서든 ‘주주 이익 침해’를 이유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는 것이다. 경영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회사 명운을 가를 대형 투자나 인수합병(M&A)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엔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법이 개정되면 ‘주주 이익’을 명분으로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기업 사냥꾼’이 활개 칠 공간 역시 넓어진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가 글로벌 스탠더드도 아니다. 미국 모범회사법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 대부분 선진국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상법 개정의 근거로 삼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회사 및 주주’라는 표현이 있지만 이는 ‘회사 이익이 주주에게도 이익’이란 일반론적 문구라는 게 학계 중론이다.
주주와 이사 간에는 법적 위임 관계도 없다. 상법상 이사는 회사의 대리인으로 주주와 계약을 체결하는 게 아니라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다. 상법을 바꿔 이사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건 국내 법체계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의 소액주주 보호 취지는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대주주 사익편취 금지, 쪼개기 상장 때 반대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 대주주 전횡을 막는 장치가 이미 도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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