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지돈(41)이 전 연인의 과거 일화를 허락없이 작품에 인용했다는 의혹을 인정하고, 전 연인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월 출간한 '브레이크 뉴 휴먼'의 주인공 권정현지의 실제 인물 도용 의혹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정씨는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브레이브 뉴 휴먼'의 캐릭터 '권정현지'의 이름을 보고 김현지 씨가 받을 충격과 아픔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다"면서 "저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며 제 잘못"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또한 2019년 발간된 '야간 경비원의 일기' 속 여성 캐릭터 에이치에 대한 묘사와 사건들이 김씨와 유사하다는 주장에 대해 "사죄한다"면서도 "제 부족함 때문에 김씨의 고통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더불어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출판한 현대문학에 "판매 중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문학도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판매 중단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린다"고 공지했다.
정씨에 앞서 김씨는 지난 23일 자신의 블로그에 '야간 경비원의 일기' 에이치와 '브레이브 뉴 휴먼' 권정현지가 자신의 일화와 이름을 허락 없이 도용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게재했다. 특히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서 에이치가 전 연인의 스토킹으로 피해를 봤다는 점, 이를 돕던 '나'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는 점, 자주 가던 카페의 이름, 실제로 거주했던 장소 등의 정보가 동일할 뿐 아니라 평소에 하던 말도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씨는 공개적인 사과, 해당 도서의 판매중지를 요청했다.
김씨는 정씨와 전 연인 관계였음에도 해당 내용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배경에 "정씨와 이메일로 관련 내용을 주고받았지만 명확한 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씨와 주고받은 메일 중 일부를 공개했다.
해당 메일에서 정씨는 김씨에게 등장인물 에이치와 관련해 "에이치는 가능한 변형을 했고 그 내용을 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이에 김씨는 "한 번도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면서 정씨가 해당 이메일이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다만 정씨는 김씨가 '브레이브 뉴 휴먼' 속 권정현지의 이야기가 "사랑을 잘 모르는 어머니에게 헌신하고 가족을 유지해보려고 평생 노력했던 저의 삶이 소설에 고스란히 그려졌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김씨의 삶을 쓰지 않았다"며 "인공적인 존재인 권정현지에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특성을 부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와 관련해서도 그는 "김씨가 블로그에 인용한 '스토커' 챕터는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일"이라며 "소설에서 표현된 사건은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실제 인물을 특정할 수 없게 변형해서 서술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김씨가 자신과 주고받은 메일을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사과에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정씨의 입장문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후 "저의 입장문과 비교해 꼼꼼히 읽어보시고, 제가 편집했다고 주장하는 메일 파일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며 "저는 다음 입장문에서 뵙겠다"는 글로 논란이 끝나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평론가 민경환은 자신의 블로그에 "지금은 평론을 그만뒀고, 이후로 독자로도 살지 않았지만, 정씨의 오랜 독자였고, 지금도 그의 작업이 갖는 문학적 의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정씨에게 "'야간 경비원의 일기' 집필 시기에 대한 답을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민씨는 "제가 아는한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 연재된 후 단행본이 발매됐다"며 "2월호이므로 일반적인 문예지 마감 일정을 고려하면 2018년에 집필됐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두 분께서 교제 중인 시점에 소설 창작이 이뤄졌고, 발표 전 사전 허가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 판단되지만, 그런데도 김씨는 소설이 발표되고 한참 뒤인 단행본 발간 후에야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씨의 해명에 "불충분하다고 느낀다"며 "김씨의 입장문에는 적시되고 있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공개된 2차 가해 피해 사실이 있는데, 이러한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도 했다.
더불어 소설 속에서 등장한 성적 묘사와 맥락이 김씨와 관련이 없음을 직접 밝히고, 증명 책임을 김씨가 아닌 정씨가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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