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함 만들겠다"…美 급한 불 떨어지자 벌어진 깜짝 결과 [이슈+]

입력 2024-06-29 12:18   수정 2024-06-29 13:39


“곧바로 구축함(대함 또는 대잠 공격을 주임무로 하는 군함) 건조를 추진할 거라고 하더군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친분이 있는 한 정계 인사가 전한 얘기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1억달러(약 1380억원)에 사들였다. 국내 기업으로선 첫 미국 조선소 인수다.

한화오션이 보유한 현금및현금성자산(1분기 말 기준 1조6488억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 들어갔다. 액수만 놓고 보면, 주목도가 떨어지는 인수·합병(M&A)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조선소 규모도 세계 최대에 익숙한 한국의 입장에선 매우 작다.

딜이 성사된 직후 시장에선 한화오션이 이 조선소 인수를 통해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운영(MRO) 시장에서 실리를 찾을 수 있을 점에 주로 주목했다. 구축함 건조에 바로 나서기보다는 MRO 분야에서 먼저 워밍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었다. 이는 한화그룹 스스로가 이번 M&A의 의미를 이런 쪽에 초점 맞춘 영향도 있었다. 미국은 미국 내 항만을 운항하는 선박 건조를 미국 안에서만 할 수 있도록 강제한 존스법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계 인사의 얘기 대로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동맹과 함께 종합적 해양세력을 구축해 중국을 압박한다는 미국의 해양치국(Maritime Statecraft) 전략의 핵심축으로 곧바로 자리 잡는다는 국제정치적 의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만큼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 조선사가 절실한 美

이런 기류는 딜이 마무리되자마자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이 지난 20일 해군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우리의 새로운 해양치국의 판도를 뒤집는 중요한 사건(game changing milestone)”이라고 까지 했다.

고임금, 숙련공 고사 등이 야기한 미국의 조선업 궤멸이 중국과의 해양패권 경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란 우려는 미국 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5일 발간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의 해군 구축 분석(Unpacking China‘s Naval Buildup)’에는 미국이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느끼는 공포감이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군함은 234척으로 219척의 미군 해군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다. 여기에는 80척에 달하는 중국 해안경비대의 소형 군함은 제외돼 있다.

중국 해군의 양적 우세는 전시에 중요한 이점으로 작용한다는 게 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해전사를 살펴보면 해군 규모가 더 큰 국가가 승리한 경우가 28번 중 25번에 달한다. 그나마 미국이 미사일 탑재량, 기동성, 작전반경 등으로 현대 해군의 중추라 불리는 구축함을 73척 보유해 중국의 42척보다 많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문제는 중국이 이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3년 20척의 구축함을 보유했으나, 2023년엔 42척으로 불어났다. 미국이 지난 20년간 11척의 구축함만을 진수한 데 비해, 중국은 23척을 만들었다.

미국 해군 정보국에 따르면 중국 해군의 건함 능력은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다. 군함의 질도 미국과 견줄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중국은 미국 최대 조선소보다 훨씬 거대한 조선소들을 수십 개나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건함능력은 미국 대비 최소 230배 이상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중국이 해군력을 현 추세로 팽창하고 미국이 조선업 재건에 실패할 경우 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은 높아져 갈 것으로 봤다. 미국이 지금이라도 대함 미사일들 양산과 함께 초계함과 호위함 및 무인 함정들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면 해군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 같은 아태 지역 동맹들과의 협력을 통한 조선업 재건은 필수요소로 지목된다. 미국 해군은 2025년부터 시범적으로 미국 조선소가 아닌 우방국인 한국 일본 등의 조선소에서 미 해군의 군함들을 수리받는 방안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김동관이 갖는 무게감
결국 한화의 이번 필리조선소 인수는 앞으로 급증할 게 확실시되는 미국의 구축함 건조 발주요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고, 한국이 미국의 해양패권 재구축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는 점에서 금액으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의미를 지닌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화 내부에선 창업 이래 최대 승부수란 얘기도 나온다.

한화가 앞으로 미국 군함 건조 등으로 방위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데엔 김동관 부회장의 존재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할아버지인 고(故) 김종희 창업주, 아버지 김승연 회장이 꾸준히 쌓아온 미국 내 정·재계 인맥에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정치학과)를 나온 김 부회장의 학맥이 합쳐져 막대한 시너지를 낼 것이란 논리다. 미국 엘리트들이 높은 점수를 주는 군 경력(공군 장교),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의 통역을 맡으면서 인정 받은 고급 영어 구사능력은 덤이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지난 4월 필리조선소와 미국 정부 발주 함정과 관공선 신조 및 MRO 사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HD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이 조선소를 인수했다. 여기엔 이런 요인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한 금융계 인사는 “미국에서 ‘하버드 출신’이 갖는 이점은 한둘이 아니다. 김 부회장 정도라면 정·관·재계 주요 인사들을 국내 오너 기업인 중 누구보다 쉽게 접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동관이라는 존재만으로 한화오션의 기업가치는 몇조는 더 쳐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종현 한경닷컴 뉴스국장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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