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 디지털에 갇힌 청춘들…훌쩍 떠나고픈 마음 쏟아냈다

입력 2024-06-26 21:02   수정 2024-06-27 00:34


“저도 0과 1을 벗어난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2060년 대한민국 서울. 삶은 0과 1 두 개의 숫자에 지배받는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같은 디지털 기술로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이 도래하면서다.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을 여행하며 얻는 긴장과 설렘까지도 이젠 현실이 아니다. 짐을 싸는 대신 ‘국내 여행_피크닉 패키지 ver 2.1’을 컴퓨터에 내려받고, 뙤약볕에 나가기 전 선글라스를 쓰는 대신 어두컴컴한 방에서 VR 헤드셋을 착용하는 게 여행이다.
○미래 디지털 사회 단면 잘 표현

한창 VR로 여행을 즐기던 젊은 청년은 헤드셋을 내던지고 침대에 주저앉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눈앞의 세상을 담으며 얻어야 할 여행의 짜릿함까지 가상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무래도 행복하지 않아서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청년의 눈동자엔 이채가 돌기 시작한다. 참된 여행의 가치를 찾기 위해 바깥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순간이다.

박선영 감독이 ‘제10회 신한 29초영화제’에 출품한 러닝타임 29초짜리 초단편영화 ‘0과 1 탈출기’ 내용이다. 이 작품은 26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0과 1’이라는 숫자가 미래 디지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이터 비트인 동시에, 만원(10,000원) 같은 돈의 흐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화에서 촬영과 편집을 담당한 지은혁 감독은 “여행을 생각하면 보통 긍정적인 걸 떠올리는데, 우리는 반대로 부정적인 면을 다뤄보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는 신한금융그룹과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고, 29초영화제 사무국이 주관했다. 낯설고 어려운 금융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2015년 시작한 영화제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젊은 영화인들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주제는 ‘영화 같은 여행이야기’로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29초에 담아낸 극적인 작품이 많았다.
○‘숏폼’ 유행 트렌드에도 부합
청소년부 대상은 ‘영화와 여행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인 김민준 감독이 받았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가장 좋았던 장면이 떠오르듯, 여행도 끝마치고 나면 가장 좋았던 장면이 생각난다는 시놉시스가 올해 영화제 주제와 잘 맞아떨어졌다.

김민준 감독은 “여행하는 도중에 이 작품의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며 “시간이 지나서 추억을 떠올리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깔끔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여러 번 수정하며 다듬었다”고 덧붙였다.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은 전형주, 엄태준 감독의 ‘뜻대로 되지 않아도 행복해, 여행이니까’는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걸어가는 길을 여행에 빗댄 구성으로 호평받았다. 평소 계획에 맞춰 여행을 즐기는 남자가 여자친구와의 여행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연속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친구 덕분에 그 순간마저 추억이 되는 것을 느끼며 여행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섬세한 카메라 워크에 담겼다.

이날 일반부 대상 1500만원을 포함해 총 5000만원의 상금과 상품, 상패가 수상자들에게 주어졌다. 시상은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 등이 맡았다. 시상식엔 수상자뿐 아니라 영화제에 출품한 감독과 가족, 친구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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