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 일부가 26일(현지시간)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궁에 무력으로 진입했다가 3시간여 만에 철수했다. 볼리비아는 브라질과 페루·칠레 사이에 자리잡은 인구 약 1200만명의 내륙 국가다. 군 핵심 지도부는 "무너진 조국을 되찾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대통령과 대면했으나 결국 자진 회군했다. 사회 각계각층과 브라질과 칠레 등 주변국들이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자 대통령을 끌어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권 세력이 기획한 친위 쿠데타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쿠데타를 일으킨 후안 호세 수니가 장군은 대통령궁 밖 현지 취재진에게 "수년 동안 소위 엘리트 집단이 국가를 장악하고 조국을 붕괴시켰다"며 "우리 군은 민주주의 체제를 재구성해 국가를 일부 소수의 것이 아닌 진정한 국민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엘데베르는 보도했다.
반란군은 대통령궁으로 진입했고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을 만났다. 그러나 쿠데타군은 대통령을 체포하지 않았다. 아르세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이런 불복종을 용납할 수 없으니 철군할 것"을 요구했고 수니가 장군은 아르세 대통령에게 일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세 대통령은 곧바로 각료들과 함께 연 별도의 긴급 대국민 연설에서 "볼리비아가 군의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며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저와 내각 구성원은 이곳에 굳건히 서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러면서 군 지휘부를 즉각 교체했다.
아르세 대통령과 대립하던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역시 엑스에 "쿠데타가 발생 중"이라고 썼다. 대법원, 경찰과 소방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잇따라 군을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리요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군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볼리비아 군은 결국 이날 오후 6시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에 철군했다.
현지에선 수니가 장군이 아르세 현 대통령에게 버림받을 위기에 처하자,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니가 장군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언사를 이어왔다. 대선에 다시 출마하려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서슴없이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장기 집권한 뒤 부정 선거 의혹으로 축출됐다. 그럼에도 사회를 안정시킨 모랄레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리비아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 극심한 정치 불안에 시달렸다.
아르세 대통령은 수니가 장군이 선을 넘어 정치 개입 발언을 했다고 판단 그의 직위를 해제했고, 쿠데타로 이어졌다. 정부가 '쿠데타 시도'를 빠르게 정리하는 수순을 밟더라도, 정국 불안은 지속해서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신들은 볼리비아 검찰이 수니가 장군에 대한 범죄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수니가 전 합참의장은 이날 저녁 경찰에 전격 체포됐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수니가 장군은 체포되기 전 기자들에게 "아르세 대통령이 정치적 움직임으로 궁전을 습격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상황이 안좋은 데 내 인기를 높이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반 리마 법무부 장관은 "수니가 장군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마 장관은 자신 SNS에 "민주주의와 헌법을 공격한 혐의로 15~20년을 구형할 것"이라고 포스팅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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