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90억원을 들인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스카이돔 내 복합문화예술공간 ‘서울아트책보고’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연 수입(1억 548만원)보다 관리비(1억2339만원)가 더 나오고 주변 시설과의 시너지도 내지 못하고 있다. 고가의 예술 전문 서적을 접할 수 있는 '아트책보고'는 박원순 전 시장 사망 이후 서정협 직무대리 시절인 2020년 8월부터 추진된 사업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야구와 관련 없는 예술 관련 시설을 조성하면서 2656㎡(804평)의 공간과 매년 20억원대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길 서울시의원(국민의힘·영등포2)이 27일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아트책보고는 1억 316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도서 판매보다는 커피와 베이커리를 판매한 매출이 1억 162만원으로 비중이 컸다. 매출에서 도서와 굿즈 매입 비용을 뺀 수입은 1억 548만원이었다. 같은해 전기료, 가스비, 수도요금 등을 포함한 관리비는 1억2329만원으로 사실상 적자였다. 7~8월 매출은 2526만원으로 같은 기간 전기세(3115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아트책보고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서남권 지역에 들어선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그림책, 팝업 북, 사진집, 일러스트 북, 미술작품집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예술 관련 전문 도서 1만5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열람실을 비롯해 서점, 전시장, 체험 공간, 북 카페·휴식 공간 등이 있다. 시와 자치구가 운영하는 시민 소통 프로그램을 비롯해 예술가들이 전시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2022년 12월 개관 이후 현재까지 운영비로 48억 9497만원이 들었고, 사업 초기 공사비 등으로 지출한 36억 8225만원을 더하면 총 85억 7723만원이 시설에 투입됐다.
서울시가 아트책보고 조성 작업에 착수한 건 2020년 8월이다. 박원순 전 시장 사망 이후 서정협 직무대리가 권한대행하던 때다. 당시 서울시 문화본부는 2016년부터 비어 있던 고척돔 지하 1층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예술공간을 기획했다. 이듬해 3월까지 추진계획 수립, 기본설계 용역, 실시설계 및 리모델링 공사, 운영계획안 수립 등의 절차를 마무리했다.
공간이 넓다보니 채용한 인원도 많다. 지난해 사업을 수탁한 민간 컨소시엄 더그림·비엠컴퍼니에 서울시가 교부한 예산은 20억1900만원이었는데 이 중 인건비는 7억 3612만원(약 36%)이었다. 아트책보고 서적 큐레이션을 총괄하는 PM(프로덕트 매니저) 1명, 공간운영관리팀 14명, 운영팀 4명으로 총 19명이 현재 시설에서 근무 중이다.
통상 민간 업체에 시설을 위탁하는 이유는 전문성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시가 과거 민간 위탁한 한강 카페도 비슷한 경우다. 한강대교의 견우카페, 양화대교 양화·선유카페, 한남대교 새말카페 등이 과거 운영됐으나 최고가 입찰경쟁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구조에서 사업자의 지나친 수익추구로 인해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서울시는 올해 전망카페를 개성 있는 로컬 브랜드 카페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설을 리모델링해 특색 있는 지역 커피 브랜드를 유치할 예정이다.
이날 서울시의회 소관 상임위원회(교통위원회) 질의자로 나선 김 의원은 공간 활용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아트책보고는 박원순 시정 말미, 신규사업 추진 권한 없는 권한대행 체제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대표적 혈세 낭비 사례”라며 “매출보다 관리비가 더 나오는 세금 먹는 하마를 하루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문화본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트(예술) 테마 대신 시민 모두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넣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