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1923~1977), 그녀의 이름은 오페라에서 항성(恒星)으로 빛난다. 누구도 칼라스라는 이름 앞에 설 수 없다는 건 맞는 명제다. 강건하고 칼칼하고 비감 어린 그녀의 목소리는 늘 감동 너머에 우뚝하다. 드라마틱 소프라노면서 메조소프라노의 중저음과 극고음 콜로라투라의 스펙트럼을 품고 있는 지존(至尊)으로 자리한다. 칼라스의 위대함은 노래와 드라마의 강력하고 긴밀한 결합, 그리고 그것을 연기와 진정성으로 기막히게 재현해내는 비범한 재능과 역량일 테다.
칼라스는 미국 뉴욕 태생으로 그리스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소녀 시절 어머니의 채근으로 아테네로 가서 스페인 출신 명교사 이달고에게 노래를 배운 것이 행운이었다. 24세 때 대타로 이탈리아 무대에 데뷔하며 대박을 친다. 28세 연상 사업가 메네기니는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인물이다. 본고장 텃세를 방어하고 커리어를 쌓아줬으며 나중에 남편이 된다. 툴리오 세라핀(1878~1968)이라는 이탈리아 거장을 만난 것도 금상첨화. “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지휘자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를 마침내 칼라스에게서 찾았도다.” 그가 한 말이다.
그러나 중년에 접어든 칼라스의 삶은 기구했다. 메네기니와 사이가 멀어질 즈음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만남이 도화선이었다. 17세 연상의 이 노회한 부호는 칼라스보다 여섯 살 어린 재키 케네디와 양다리를 걸치다 결국 케네디와 결혼했다. 충격과 좌절에 빠진 칼라스는 이후 약물에 의존했고 결국 파리에서 홀로 숨을 거둔다. 심장마비. 54세라는 아까운 나이였다.
칼라스의 흥미로운 화제성 중 다이어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20대 때까지 고도비만이었다. 그러나 치열한 승부욕으로 95㎏까지 나가던 체중을 30세 때 마침내 50㎏으로 만들었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을 본 게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173㎝ 키에 이 몸무게를 평생 유지했다.
칼라스의 수많은 녹음 가운데 알프레도 카탈라니(1854~1893)의 오페라 ‘라 왈리(La Wally)’ 중 ‘그럼, 멀리 떠나겠어요(Ebben? Ne andro Lontana)’는 독보적이다. 알프스 티롤 지방이 배경인데, 왈리는 포수 하겐바흐를 사랑한다. 그러나 지주인 아버지는 충실한 집사 겔너와 결혼하라며 다그친다. 삼각관계는 비극으로 치달아 티롤의 눈더미에 갇혀 하겐바흐가 죽고, 왈리도 진정한 사랑인 그의 뒤를 따른다는 스토리다.
“그렇다면 저 먼 곳으로 떠나겠어요/종소리가 아득해지는 것처럼/거기엔 하얀 눈과 황금빛 구름이 있겠죠/그것은 희망일 거예요, 반면 슬픔과 고통도 따를 테죠/정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니…/그래요, 나 왈리는 떠나렵니다. 아주 멀리/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겠어요!”
왈리가 아버지를 거역하고 집을 나설 때 비통해하며 부르는 노래다. 은은하게 시작해 조용히 커지며 막판에 장렬히 끝난다. 템포의 완급, 음량 조절, 포효하는 고음, 중심이 잡힌 저음 등 모든 걸 갖춰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이 난공불락의 아리아는 칼라스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 주인을 찾았다.
개중엔 칼라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쇳소리가 난다. 소리 자체가 안 이쁘다. 어둡고 무섭다” 등의 비판이 나온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소프라노들이 달과 별을 지향한다면 칼라스는 크고 까만 밤하늘을 그려낸다. 가난한 이방인, 뚱뚱한 외모, 불같은 성격, 이질적 사랑과 결혼 등 가혹한 운명을 이겨낸 그녀는 독특하고 압도적인 목소리와 아우라를 이룩했다. 찬란한 슬픔의 승리라고나 할까? 의심할 바 없는 프리마돈나·디바는 오직 칼라스뿐이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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