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개막한 지난 26일, 도서전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D홀 한가운데에 긴 줄이 늘어섰다. 도서전 메인 행사 중 하나인 김연수 소설가와 강혜숙 그림책 작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사전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된 이 강연의 현장 좌석을 잡으려고 수십 명이 줄을 섰다. 이날 100여 석 넘게 마련된 좌석이 모자라 일부는 서서 이야기를 들었다. 김 소설가는 “이렇게 줄이 길고 붐비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후이늠은 지혜로운 말(馬)이 지배하는 나라다. 말은 인간과 달리 거짓말을 하지 않고 완벽한 이성으로 판단한다. 무지와 오만, 욕망, 비참, 전쟁, 갈등 등이 없는 일종의 유토피아다. 김 소설가는 이날 강연에서 “후이늠은 우리가 지금 처한 모순적인 상황과 비이성적인 일들이 해결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며 “이 책을 통해 각자의 후이늠에 대해 생각해보고 토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저마다 꿈꾸는 후이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북토크 프로그램 등도 다양하다. 28일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와 황현정 샤크짐 공동대표, 황선우 작가, 황효진 뉴그라운드 대표 등은 여성의 시각에서 평화로운 일상, 후이늠을 다룬다. 김초엽 소설가와 심완선 공상과학(SF) 평론가는 30일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새로운 세계, 디지털 후이늠에 대해 이야기한다.
후이늠을 주제로 한 기획도서도 나왔다. 강화길·구병모·김혜순·박형준·안희연·이승우·임솔아·장강명·정호승·진은영·천운영·편혜영 등 7명의 소설가와 5명의 시인의 글을 모은 <후이늠-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다. ‘후이늠’을 키워드로 책 400권을 큐레이션해 소개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출판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강연도 이어졌다. 메샤엘 압둘라 알하르비 작가와 아비르 알알리 소설가 겸 시인, 아시르 알나시미 소설가 등은 27일 ‘사우디아라비아 문학의 현주소’에 대해 강연했다. 압둘라 알라카이비 작가 겸 평론가는 29일 사우디아라비아 소설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오만은 29일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자국 작가 조카 알하르티와 국내 소설가 은희경의 북토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두 소설가는 해방과 인간의 존엄, 자유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부슈라 알와하이비 소설가 겸 시인과 모하메드 빈 칼판 알야햐이, 자란 알카시미 소설가 겸 시인 등 오만 문학 전문가들은 오만 작가들의 생활사가 문학에서 어떤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나는지 살피는 북토크를 27일 열었다. 도서전 현장에선 오만의 유명 서예가 바르드 알 가피리가 방문객을 상대로 아랍 캘리그래피를 써주는 이벤트를 열어 긴 줄을 늘어뜨렸다.
이 밖에 노르웨이 생물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 튀게손 작가가 내한해 강연을 열고, 내년 도서전 주빈국인 대만이 48개 출판사의 신간 및 수상 도서 300여 권을 전시했다.
도서전에 참가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아침부터 캐리어까지 끌고 와 열정적으로 둘러보는 관람객들을 보고 놀랐다”며 “책이 위기인 시대라고 하지만 좋은 책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가 여전히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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