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도와 기독교인, 야만인과 문명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슬람과 서구 기독교 문화 등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라는 한 집단과 그 대척점에 ‘적’이라는 또 다른 집단이 존재했다. 종교나 이념 또는 체제를 가지고 대결하면서 서로 간에 세력을 결집하고 확장했다. 약자는 패권 국가의 설계에 따른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최근 세계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갈등 구도 속에서 대립하고 있다. 우익 포퓰리스트의 등장과 극단주의의 득세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고, 세계는 또다시 분열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계속 이런 ‘대결 구도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는 걸까? 대결 구도의 배후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이런 갈등과 대립을 통해 누가 결국 이득을 볼까? 최근 독일에서 출간돼 화제인 책 <관용의 세기(Das Jahrhundert der Toleranz)>가 이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시민의 의무’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일의 의미’ ‘인공지능 시대 인간 존재의 이유’ 등 출간하는 책마다 시의적절한 주제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철학을 표방해온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관용의 세기>를 통해 세계 질서 재편에 따른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 이념 대결과 체제 경쟁을 끝내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선언한다.
하나의 거대한 배 안에 타고 있는 인류는 지금 지구 생명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적 재앙 앞에 놓여 있다. 생각의 차이를 이유로 서로 나뉘어 갈등하고 대결할 수 있는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국가와 문화를 편 가르고 분열시키는 것이 아닌, 인류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것이 강력한 구심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21세기에는 전통적인 우방과 적의 대결 구도를 버리고, 다양한 문화와 발전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분열을 조장하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모든 국가와 문화가 공유하는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면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모든 국가와 문화가 공유하면서 인류를 하나로 묶어줄 강력한 구심점이 ‘인권’이라고 소개한다. 나와 다른 타인을 대할 때 ‘관용’ ‘다양성’ ‘개방성’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인권이다. 불행한 과거의 망령, 대결의 정치적 유산, 광신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공존을 시작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스스로 인류 문명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관용의 세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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