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현금에 묻어놔"…100조 끌어모은 삼성전자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입력 2024-07-24 17:51  

이 기사는 07월 24일 17:5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금 부자'다. 올해 3월 말 현금성 자산이 100조원에 달했다. 비금융기업 통틀어 가장 많다. 현금을 굴리는 방식은 보수적이다. 상당액을 언제든 뽑아 쓸 수 있는 수시입출금식예금·머니마켓펀드(MMF)나 만기 1년 이하의 국채 등에 묻어뒀다. 외부 자금조달도 극도로 꺼리는 등 '무차입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보수적 재무전략은 애플 TSMC 등 경쟁업체와는 상반된다. 애플 등은 보유한 현금 220조원 대부분을 회사채로 굴린다. 회사채 발행을 비롯한 자금조달도 적극적이다. 애플과 TSMC의 합산 차입금만 200조원에 이른다. 삼성의 보수적 재무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현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굴려 운용수입을 늘리는 한편 필요하면 차입금도 탄력적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금 107조 굴리는 삼성전자…차입금도 거의 없어
2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3월 말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07조15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보다 5조601억원 불었다. 이 회사는 이 가운데 97조3928억원을 현금을 비롯한 단기금융상품(1년 미만의 예금, 수시입출식예금, 양도성예금증권, MMF, CP 등)으로 굴리고 있다. 나머지 9조6226억원은 미국 유리제조업체 코닝(지분 9.5%·3조5512억원), 삼성중공업( 15.2%·1조1472억원) 주식 등이다. 이들 주식은 삼성 계열사나 전략적 협력을 맺은 회사 등이다. 보유한 금융자산을 현금이나 1년 이하 채권에 묻어두는 것이다. 극도로 보수적인 운용 전략이다.

자금 운용은 물론 자금조달 전략도 보수적이다.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올 3월 말 차입금은 14조56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차입금 상당액은 매출채권(외상채권)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은 것이다. 물건을 외상으로 제공하고 받은 매출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미리 당겨쓰는 것이다. 사실상 자금조달을 위한 대출과는 거리가 멀다. 이 회사의 회사채 발행액은 5415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가 2016년 인수한 하만이 인수 직전인 2015년에 발행한 회사채 5158억원어치 등으로 구성됐다. 나머지는 삼성전자가 1997년에 만기 30년으로 발행한 회사채 258억원어치다. 이 회사는 2001년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사실상 국내 조달시장에서 자취를 감쳤다.

최근 삼성전자가 산업은행과 국내외 투자은행(IB)과 접촉해 대출과 회사채 조건을 파악하기는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은 없다"며 "경영에 필요해 조달 조건만 파악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220조원어치 회사채 굴려
삼성전자와 달리 애플은 공격적 재무전략을 쓴다. 올해 3월 말 애플의 현금성 자산은 1620억달러(220조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현금은 300억달러에 그쳤다. 나머지 1320억달러는 만기 1년 이상의 금융상품으로 운용했다. 애플이 보유한 만기 1년 이상의 금융상품을 세부적으로 보면 회사채(680억달러), 미 주택저당증권(MBS·220억달러), 미 국채·기관채(185억달러), 해외 국채(170억달러) 등으로 구성됐다.

애플은 올들어 3월 말까지 25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사들였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236억3600만달러)을 웃도는 규모다. 이 기간 설비투자액(43억8800만달러)의 5배가량 많았다. 애플의 자금 운용 방식은 제조업체보다는 자산운용사에 가깝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여기에 차입금도 적극적으로 조달하는 중이다. 올 3월 말 애플이 보유한 차입금은 1050억달러(약 145조원)다. 애플은 저금리 차입금으로 조달한 자금과 벌어들인 현금을 고금리 회사채 등으로 굴리면서 적잖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 자금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주주환원에도 나서고 있다. 애플의 주주환원 규모는 2021년 855억달러, 2022년 902억달러, 2023년 766억달러로 집계됐다.

TSMC도 공격적으로 차입금을 조달한다. 이 회사의 3월 말 차입금은 9656억대만달러(41조1900억원)에 달했다. 차입금은 모두 만기가 1년을 초과하는 장기차입금이다. 이들 차입금의 조달금리는 연 0.39~4.5% 수준이다. 상당액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설비를 구축하기 위한 자금으로 조달했다. 이 회사의 3월 말 금융자산은 1조6982억대만달러에 달했다. 이 회사도 대부분 1년 이하의 예금 등에 묻어 뒀다.

삼성 달라질까…내부서도 회의론
삼성전자가 애플·TSMC와 상반된 재무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사업 특성이 다른 데다 조달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판이해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비 구축에 매년 수십조원을 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40조~50조원가량을 반도체 설비에 쏟을 계획이다. 설비투자에 상당한 자금을 쓰는 만큼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경기 변동 폭이 심한 만큼 ‘현금 안전판’을 넉넉하게 쌓아두는 편이다.

반면 애플은 아이폰을 비롯해 주력 제품의 기술과 디자인만 개발한다. 아이폰 등의 생산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100% 외부 제조업체에 맡긴다. 아이폰과 시스템반도체 생산을 각각 대만 폭스콘과 TSMC에 맡긴 것이 대표적이다. 설비투자로 유출되는 자금이 많지 않은 만큼 여윳돈이 상대적으로 많다. 애플은 이 자금을 금리가 높은 중장기 회사채 등으로 굴려 운용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자금시장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자금시장 구축(Crowd-out)'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신용등급이 국가와 맞먹는 삼성전자가 자금을 빌리면 여타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회사채 발행으로 시중 자금을 흡수하면, 시장 유동성이 쪼그라든다. 그만큼 줄어든 유동성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여타 기업들의 조달금리도 뜀박질한다. 애플과 TSMC는 주로 유동성이 풍부한 미국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만큼 자금시장 구축 우려가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애플과 TSMC처럼 공격적 재무전략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기회비용이 상당하다는 논의가 있다"며 "해외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현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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