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 "메이저 우승 감격 아직 생생…포기하지 않는 골퍼 되겠다"

입력 2024-07-01 18:00   수정 2024-07-02 00:16


“늘 메이저 우승을 꿈꿔왔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제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결국 해냈다는 벅찬 감격이 아직도 떠나지 않습니다.”

1일 전화로 만난 양희영(35)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지난달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쥔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우승의 감동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다. 75번째 메이저 도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018년 에비앙 챔피언십 앤절라 스탠퍼드(미국·당시 40세) 이후 최고령 기록이자 한국 선수의 최고령 메이저 우승 기록을 새로 썼다. 양희영은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도전을 즐기며 ‘포기하지 않는 골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역대급 난코스에서 압도적 플레이
양희영은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열 살 때 골프를 시작해 만 20세가 되기 전에 유럽여자골프투어(LET)에서 3승을 거두며 ‘남반구의 미셸 위’로 불렸다.

2008년 입문한 LPGA투어에서는 적잖은 시련을 겪었다. 데뷔 6년 차인 2013년에야 첫 승을 올렸고 2015, 2017, 2019년 태국에서 우승을 추가했다. 2022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후원 계약이 종료되면서 후원사 이름 대신 평소 좋아하던 ‘스마일’을 그려 넣은 모자를 써야 했다. 그래도 지난해 11월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4년9개월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올 시즌도 녹록지 않았다. 톱10 한 번 없이 US여자오픈을 포함해 다섯 번이나 커트 탈락했다. 양희영은 “US오픈 예선 탈락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내가 해야 할 몫의 연습을 대회장에서 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털어놨다. 그 후 이어진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를 잡아준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힘”이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말을 수시로 되뇌었다”며 “매일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멘털, 스윙, 퍼팅에서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 노력은 메이저 우승을 잡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대회는 역대급 난도로 선수들을 애먹였다. 페어웨이가 좁고 그린 주변이 까다로운 탓에 올 시즌 6승을 올린 세계 1위 넬리 코르다(26·미국)마저 2라운드에서 81타를 치고 커트 탈락했다. 반면 양희영은 물 만난 고기처럼 질주했다. 그는 “까다로운 코스여서 오히려 집중이 더 잘됐다”며 “샷감도 좋았고, 내가 치기로 한 샷에 100% 확신을 갖고 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양희영은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72홀 가운데 단 7개 홀에서 보기 이하의 스코어를 적어냈다. 그는 “도전이 닥친 순간은 힘들지만, 끝내 극복한 뒤 찾아오는 성취감이 좋다”며 “골프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우승이 확정된 뒤 캐디에게 “내가 골프가 싫다고 하면 거짓말인 줄 아세요”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년에는 다른 모자 쓰고파”
파리 올림픽 출전권은 이번 우승으로 따낸 ‘깜짝 선물’이다.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우승으로 양희영은 세계 랭킹을 25위에서 5위로 끌어올리며 출전권을 얻어냈다. 그는 “정말 원하던 올림픽이지만 출전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며 “최대한 체력을 끌어올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4위에 그친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양희영의 우승은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한국 여자골프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지난해 양희영의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우승 뒤로 끊긴 한국 선수 우승을 양희영이 15개 대회 만에 끊어냈다. 그는 “LPGA투어 선수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됐다”며 “특히 미국과 태국에서 재능 있는 선수가 대거 진출해 한국 선수의 독주가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한국 선수의 연습량이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다. 우승이 종이 한 장 정도의 실력 차이로 결정되는 것이 지금의 LPGA”라는 설명이다. 양희영은 “한국과는 잔디도 다르고 그 종류가 많아 선수가 구사해야 하는 샷이 늘어난다”며 “요즘 선수들은 비거리부터 쇼트게임, 퍼트까지 못하는 게 없다. 하지만 한국 선수도 적응기를 거치면 재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시즌 최종전에 이어 올해 ‘메이저 퀸’까지 등극했지만 그의 모자에는 여전히 스마일이 자리 잡고 있다. 35세 ‘노장’의 성공 가능성과 상품성에 기대를 건 기업이 많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양희영은 메이저대회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하며 건재를 과시했고, 최고령 우승으로 선수와 골프 팬들에게 영감을 줬다. 포기하지 않는 골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커리어 매 순간 실현하고 있다. 그는 “스마일을 좋아하지만 내년에는 다른 무늬가 있는 모자와 함께하고 싶다”며 웃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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