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9년에 성립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922년 해체되기까지 무려 623년을 존속했는데 그 힘의 핵심도 잔인한 승계 플랜 덕분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승계자는 피를 나눈 형제를 모조리 죽이고 난 다음 최후까지 살아남은 1인이었다. 왕위 후보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은 반란의 원천을 미리 차단했다.
스티브 잡스는 병으로 회사를 떠나야만 했을 때 공급망 관리의 달인이던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을 2011년 애플의 CEO로 선발했다. 월마트는 창업자인 샘 월튼 가문이 여전히 주요 경영진과 이사회에 참여하며 전문 경영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한다. 록펠러는 공익재단에 전재산을 환원하고, 재단이 기업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도록 함으로써 창업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건 승계 플랜을 가동할 수 있느냐이지, 어떤 방식으로 승계를 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프랑스 제1의 수출품을 만드는 기업이자 ‘명품 제국’을 일군 LVMH(루이뷔통모엣헤네시)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후계자를 양성하는 방식은 과거 절대 왕정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르노 회장은 한 달에 한 번씩 5명의 자녀를 LVMH 본사로 불러 점심을 함께 하면서 각종 사업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지난 4월 연례회의에서 삼남까지 이사회에 합류한데 이어 25살인 막내도 조만간 이사회에 입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5명의 자녀가 모두 경영 수업을 받는 것이다. 프랑스는 민중이 군주를 시해한 혁명의 발상지이자 ‘공산(共産)’이란 몽상을 꿈꿨던 혁명가들의 고향이다. 그런 곳의 대표 기업이 혈연 상속을 주요 승계 플랜으로 가동한다.
사회 민주주의와 코포라티즘(노·사·정 협력 지배)이 가장 번성한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이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바꾼 것도 국가적 차원의 기업 승계 플랜이 절실해서다. 1980년대까지 스웨덴의 잘나가던 뿌리 기업들이 과도한 상속세로 혈연 상속이 불가능해지자 기업인들은 매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 기업 대부분이 독일에 팔렸다.
TSMC는 대만 정부가 최대 주주이긴 하지만, 글로벌 금융 큰손 등 외국인 지분율이 75%에 달한다. 모리스 창에 이어 마크 리우가 올해까지 6년 간 회장직을 이끌었고, 후임으로 부회장이던 C.C 웨이가 올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에 선출됐다. 그나마 리우 회장 시절엔 모리스 창이 후견인 역할을 했지만, 고령의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웨이 회장 시대의 TSMC는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야하는 풍전등화의 신세와 같다.
기업 경영의 역사에서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승계의 과정에서 창업가 정신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로 집약된다. 국가 간 첨단 산업 전쟁이 치열한 요즘엔 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세대 간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래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이른바 ‘승계 플랜’을 오랫동안 준비한다. 아르노의 방식이건, 모리스 창의 방식이건 정답은 없다.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그래서 우려스럽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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